연이은 검사 결과 조작…日 정부부터 기업까지 왜 이러나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미쓰비시전기·도시바 이어 건설통계까지
문제 지적 못하는 조직의 폐쇄성이 원인
"관리직 자기보신·눈치보기에 현장무시"
사외이사 과반 이사회도 무용지물
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부터 기업의 품질검사 결과까지 부정과 조작이 잇따르는 가운데 화학 대기업 도레이에서도 또다시 안전성 검사와 관련해 부적절한 행위가 일어났다. 내부적으로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는 조직의 극단적인 폐쇄성이 사고가 잇따르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도레이는 가전제품과 자동차용 플라스틱 부품의 원료인 수지제품의 안전성 검사와 관련, 지바공장과 나고야사업장 2곳에서 적어도 10여년 간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이 공장들은 미국의 제3자안전과학기관(UL)이 연 4회 실시하는 불시검사에 원래 제출해야 했던 제품 샘플 대신 따로 제작한 시험용 샘플을 제출했다.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뤄진 일로 회사는 보고 있다.


○전수조사로도 부정 못 걸러내

부적절한 수법으로 검사를 통과한 제품은 약 110종으로 2020년 한 해 동안 약 4만9000t이 판매됐다. 자체 조사 결과 4만6000t의 제품은 안전성에 문제가 없었지만 나머지 3000t은 내연성 기준을 미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레이는 문제가 된 제품의 출하를 일시중단시켰으며 현 시점에서 이 제품으로 인한 사고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도레이는 2017년에도 타이어 보강재를 만드는 자회사에서 품질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발각됐다. 이를 계기로 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품질 검사 부정이 있는지 조사했지만 이번에 발각된 부적절 행위를 찾아내지 못했다. 수지제품의 부정 행위는 자체 감사가 아니라 작년 11월 실시한 사내 설문조사에서 일부 사원들이 문제를 고백하면서 발각됐다.

도레이는 변호사 3인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원인을 조사하기로 했다. '메이드 인 제팬'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품질검사 조작과 경영활동의 부정 행위는 업종을 불문하고 일본 경제계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지난해 일본 6개 공장에서 총 47건의 허위 검사성적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즈호은행에서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80%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 장애가 작년 한 해 동안만 8번이나 일어났다.일본 최대 민영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의 가시와자키·가리와원전에서는 작년 초 직원이 타인의 신분증(ID) 카드로 중앙제어실에 부정 출입하는 사례가 적발됐다. 일본의 원전이 테러에 대비해 무단 침입자를 탐지하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사례여서 가뜩이나 바닥인 일본인의 원전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렸다. 도쿄전력은 2011년 폭발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제1원전의 운영사다.

도시바는 작년 7월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경제산업성을 통해 외국인 행동주의 펀드 주주에 압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본사 경영진은 퇴물..현장 이해못해"

일본 기업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제3자 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원인을 조사한다. 미쓰비시전기, 도시바, 미즈호은행, 도쿄전력 조사위원회가 공통으로 지적한 일본 기업의 문제점은 '문제가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조직의 폐쇄성'이다. 미쓰비시전기 조사위원회는 "상층부 간부진들이 결산실적을 맞추거나 자기보신에만 급급해 직원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즈호은행에서는 "중간급 간부가 경영진의 눈치만 보고 리스크를 떠안으려 하지 않아 현장의 의견이 본부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도쿄전력의 사원들은 "현장의 상사는 언제나 고압적인 태도여서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고 본사의 경영간부들은 퇴물들이어서 현장실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사회의 감시기능도 작동하지 않았다. 미쓰비시전기, 미즈호은행, 도시바 모두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지명위원회 등 설치회사'지만 사외이사들에 의한 문제제기는 없었다. 구보리 히데아키 변호사는 "사외이사를 늘리더라도 사장에게 잘 보이려는 인물이나 윗사람에게 맞서지 않는 '예스맨'으로 가득한 '친구 내각'인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품질 부정'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통계조차 10년 가까이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국토교통성이 지난 8년 동안 건설회사들의 건설수주 실적을 무단으로 수정해 중복 계상했다고 보도했다.

국토교통성은 건설사들로부터 매월 수주실적을 제출받는다. 하지만 자료 제출일을 맞추지 못해 수개월치를 한 번에 제출한 건설사의 실적은 마지막 달의 실적을 중복 계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6월 100억엔, 7월 100억엔, 8월 100억엔을 수주한 건설사의 실적을 6월 100억엔, 7월 100억엔으로 반영한 후 8월은 300억엔으로 집계하는 식이다.

건설수주 실적은 국내총생산(GDP)에 반영된다. 이 때문에 지난 8년간 일본의 GDP도 부풀려 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일본의 건설수주 실적은 79조5988억엔(약 836조원)으로 전체 GDP의 14%에 달한다.2020년 한해 동안에만 건설수주 실적이 4조엔 가량 부풀려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연간 GDP의 1%에 달하는 규모다. 2020년 이전은 과대계상된 규모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일본의 GDP가 상당폭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