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들이 1등 위해 사활을 거는 '이것'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프로슈머(prosumer)’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이는 엘빈 토플러다. 그는 1979년 『제3의 물결』이란 저자에서 참여형 소비자가 미래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소비자를 능동형으로 바꾸는 핵심 기제는 정보다. 인터넷과 퍼스널 컴퓨터의 전세계적인 보급으로 생산자(공급자)가 구축한 거대한 정보의 둑이 무너지고 있음을, 미래학자는 일찌감치 간파했다. 프로슈머는 현대 자본주의의 총아로 불리는 플랫폼 기업의 기초다. 내 집을 기꺼이 여행객에 제공하려는 소비자가 없었다면 에어비앤비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페이스북, 유뷰트,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 플랫폼에서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정보를 공급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정보를 소비한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프로슈머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거대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자유시민과 플랫폼의 프로슈머

프로슈머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닮았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모여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을 설파하고, 타인과 밤새도록 토론하며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가 되는 이상향 말이다. 1990년대 포스트 모너니즘이라는 이름과 함께 등장했던 풀뿌리 민주주의 혹은 아래로부터의 정치 같은 개념들은 봉인돼 왔던 권력의 블랙박스를 들여다보고 싶은 수많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여망을 담고 있다.

프로슈머는 플랫폼 기업이 영속하기 위한 핵심 중 하나다. 맛집 인증에서 인스타그램이 네이버 블로그를 압도할 수 있던 건 컨텐츠의 진정성 덕분이다. 최근엔 뒷광고 논란이 많긴 하지만, 대중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직접 맛보고, 가보고, 썬 본 컨텐츠에 무한 신뢰를 보낸다. 중국에서 왕홍이라 불리는 인플루언서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며 순식간에 상품을 팔아치우는 현상도 프로슈머의 위세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정부가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며 대중 위에 군림한다. 중국의 대중들이 탈권위주의적이고 관이 배제된 개인 인플루언서에 열광하는 소비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주가 하락과 플랫폼의 '매력'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플랫폼들의 공통점은 탄탄한 프로슈머 집단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쿠팡이 대표적이다. 쿠팡은 광고를 배제한 자유 경쟁에서 1등을 차지한 판매자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구매자들의 후기를 늘리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네이버 역시 프로슈머의 가치를 존중하지만, 가치 비중을 굳이 따지자면 판매자의 공급 편익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사업 구조상 판매자가 많을수록 네이버는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플랫폼의 락인 효과를 높이려는 쿠팡의 전략은 쿠팡 뷰티데이랩이 진행 중인 ‘내 손으로 만드는 데일리 뷰티 필수템’이란 캠페인에서 잘 드러난다. 쿠팡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투표로 결정해 이들 제품을 쿠팡과 협업하는 강소기업에서 출시하도록 하는 캠페인이다. 이병희 쿠팡 리테일 부사장은 "쿠팡 뷰티데이터랩을 통해 1년간 뷰티 고객들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상품을 판매하고자 이번 캠페인을 기획했다"며 "이제 고객이 원하는 상품에 투표하고 구매하는 새로운 방식의 쇼핑을 경험해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무신사가 단기간에 패션 플랫폼 업계의 1위로 올라설 수 있던 것도 회원들이 쏟아내는 방대한 스타일 후기들 덕분이다. 소비자들은 무신사에 올라온 체형별, 피부톤별, 취향별 다양한 스타일들을 눈으로 간접 체험함으로써 온라인 패션 구매의 리스크를 최소화시킨다. 무신사가 최근 ‘무신사 스냅(MUSINSA SNAP)’을 일반 고객 대상의 패션 커뮤니티로 확대한 것도 프로슈머의 위력을 높이 사고 있기 때문이다. 무신사 스냅은 2005년에 ‘거리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무신사의 패션 콘텐츠다. 패션 커뮤니티로 시작한 무신사는 거리 패션 콘텐츠로 패션 피플의 다양한 스타일을 공유하며 최신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큰 호응을 얻어왔다.

그렇다면, 프로슈머의 지지를 받기 위한 비결은 무엇일까. 카드 제휴 할인과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돈으로 해결될 일이면 스타트업보다 기존 대기업들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독식했을 것이다. 일률적으로 하나의 요인만을 꼽긴 어렵겠지만, 프로슈머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 ‘매력’이다. 한때 네이버의 녹색창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공유한다는 캐치프레이즈 덕분이었다. 하지만 녹색창이 광고로 오렴되고, 네이버에서 생산되는 정보가 때론 날 것 그대로가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네이버라는 플랫폼의 매력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노란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의 관료적 조직 문화에 반발해 카카오를 만든 김범수와 그의 친구들은 욕망의 열차를 멈추지 못하면서 스스로 매력을 떨어뜨렸다. 매력이란 키워드는 메타버스 플랫폼과도 연관이 깊다. 향후 누가 메타버스 세계를 지배하느냐는 결국 프로슈머들로부터 어떤 기업이 매력적인 플랫폼으로 평가받느냐에 달려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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