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발목잡는 '배우자 리스크'…유례없는 '검증 칼날'

정책 대신 네거티브 공방
李 '우클릭'·尹 '좌클릭' 공약 비슷
아젠다 경쟁보다 검증 난타전

'준비 안된 배우자' 등판
김혜경 '의전'·김건희 '경력' 논란
'0선' 李·尹, 뒤늦게 리스크 부각
‘개혁과전환 촛불행동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서울경찰청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여야가 유례없이 혹독한 대선 후보의 배우자 검증에 들어갔다. 거대 담론과 정책 선거가 실종된 상황에서 네거티브 화살이 후보를 넘어 배우자까지 겨냥하는 모양새다. 주요 두 후보의 ‘0선(국회 무경험) 리스크’ 불똥이 부인에게로 옮겨붙었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후보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로 검증 대상이 넓어지는 정치 현상의 연장선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야 후보 배우자 모두 상대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배우자인 김혜경 씨는 이 후보의 경기지사 시절 도청 공무원들로부터 ‘황제 의전’을 받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약 대리처방, 음식 배달 등 개인 심부름을 비롯해 법인카드 유용 등 공금 횡령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에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인 김건희 씨도 겸임 교수 채용 과정에서 경력 부풀리기 의혹을 비롯해 ‘무속 중독’ 논란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김건희 씨의 ‘7시간 통화 녹취록’을 통해 ‘미투 관련 발언’이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이처럼 배우자 논란이 확산한 것은 대선 아젠다가 실종되고 정책 차별성이 모호해지면서 자연스레 네거티브 공방이 가열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대선에서는 ‘행정수도 이전’ ‘한반도 대운하’ ‘경제민주화’ ‘적폐청산’ 등 거대 담론을 중심으로 양 진영이 대립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여야 모두 이렇다 할 새 정부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회복이나 부동산 시장 안정 등 차기 정부의 정책 목표가 분명하다 보니 정책 차별화도 힘든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여야 모두 여성표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후보 배우자를 공격해 상대방에서 이탈하는 여성표를 얻으려는 심산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유상범 국민의힘 법률지원단장(가운데)이 3일 대검찰청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고발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자 관련 각종 의혹이 부각된 것은 후보들의 ‘0선 리스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를 하다 보면 후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등까지 여론의 검증을 받는데 이 과정을 거치지 않다 보니 뒤늦게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후보도 여의도 정치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지는 지방자치단체장만 경험했다.

배우자 의혹이 확산한 데는 후보 본인의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 많다.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나 행적 등과 엮이면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관련해선 이 후보가 과거 성남시장 시절 “공금 횡령은 한 번만 하더라도 퇴출시키겠다”고 했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김건희 씨와 관련된 ‘경력 부풀리기’의 경우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의 빌미가 된 적이 있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사회과학과 특임교수는 “두 후보 모두 갑작스럽게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가 된 만큼 배우자 역시 준비가 돼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이른바 ‘최순실 국정 농단’이나 ‘조국 사태’ 등을 겪으면서 정치권에서 측근, 배우자로 검증 대상이 넓어진 게 이번 대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정치권의 의견은 분분하다. 가족과 측근 비리를 예방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네거티브 대상이 확대되면서 국민들의 정치 불신만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