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탈모공약과 실손보험 적자

"'과잉진료' 맹점 드러난 실손보험
적자 커지자 보험료 폭탄 부메랑
건보 보장확대, 국민부담 가중"

장진모 마켓부문장 겸 금융부장
탈모 치료를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하겠다는 대선 공약이 득표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일단 흥행은 성공한 것 같다. 단번에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일본 언론들도 주목했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탈모인들이 겪는 불안, 대인기피 등은 결코 개인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면서 탈모치료, 모발이식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당 의원들도 “탈모는 질병이다. 그 스트레스, 그 눈길들,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1000만 탈모인 여러분, 이재명으로 단결하자”고 거들었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이마선이 넓어지고 있는 기자도 탈모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탈모 치료를 국가가 지원해야 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현행 건강보험은 피부염에 의한 탈모 등 일부 병적인 탈모(2020년 23만 명)를 제외한 일반적인 탈모는 보장하지 않는다. 질환 치료가 아니라 ‘미용’으로 보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유전성 탈모, M자형 탈모는 자연스런 노화현상이며 방치한다고 해서 생명이나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탈모 인구가 더 늘고, 스트레스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해 언젠가는 질환으로 간주해 건보적용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설사 그렇다 해도 문제는 그 부담을 누가 지느냐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국민이 매달 세금처럼 내는 건강보험료로 운영된다. 소득(직장가입자)과 재산(지역가입자)에 따라 차등 부과된다. 전체 직장가입자가 낸 건보료가 근로소득세를 넘어설 정도로 부담이 커졌다. 문재인 정부의 보장확대 정책(문재인 케어)으로 건보 재정은 4년 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그걸 메우느라 건보료를 올리고 그것도 모자라 정부 예산에서 보태고 있다.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 실태를 보면 건보의 암울한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보험사들이 판매하는 실손보험은 병·의원과 약국에서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보상해준다. 건보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고액 치료비도 보장한다. 예기치 못한 질병·상해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덜 수 있어 2000년대 중반부터 불티나게 팔렸다. 가입자가 2700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10여 년 뒤부터 맹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입자들은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고, 병원은 하지 않아도 될 치료를 권유하며 이익을 챙긴다. ‘의료쇼핑’ ‘과잉진료’라는 집단적인 모럴 해저드에 빠진 것이다.

백내장 수술은 도덕적 해이의 끝판왕이다. 일부 병·의원들은 30만~40만원이면 충분한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환자에게 400만~800만원의 다초점 렌즈 삽입술을 권유하고 보험금을 챙기고 있다. 2016년 779억원에 불과했던 백내장 수술 실손보험금은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고가의 도수치료 보험금까지 술술 새면서 실손보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7년 1조3000억원, 2019년 2조8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매년 2조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다. 이대로 가면 향후 10년간 누적 적자가 100조원에 달할 것(보험연구원)이라고 한다. 작년 말 보험사들은 더는 적자를 감내할 수 없다며 보험료를 25% 인상하려 했지만 정부가 제동을 걸어 평균 14.2% 인상하는 데 그쳤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보험료 폭탄은 더 세질 것이고, 선량한 가입자의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의료쇼핑·과잉진료에 직면한 건보도 실손보험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건보 재정이 악화되자 암 환자들은 올해부터 최신 항암제 치료에 수백만원씩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건보 적용을 애타게 기다리는 난치·희귀질환자도 80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생명과 무관한 탈모 치료에 구멍 난 건보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의료 취약층과 사회적 약자 보호가 우선이라는 건보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탈모 공약’을 던진 건 표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