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거짓말 싸움, 남양유업 소송전 [딜리뷰]

[한경 CFO Insight]
지난 4일 집행유예 기간 중 또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 씨가 징역 1년8개월 실형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하필이면 남양유업이 미혼모자 생활시설인 애란원에 분유 등을 후원했다고 보도자료를 낸 날이었죠.

남양유업은 지난해 5월 홍원식 회장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와의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이후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계약이 무효라는둥, 상대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둥 수차례 공방 끝에 법정 싸움으로 넘어갔고, 홍 회장은 한앤코와의 소송서 승소할 경우를 전제해 대유위니아그룹과 조건부 SPA까지 맺었습니다.설 연휴 전에는 홍 회장과 대유간의 계약이행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인용한 데 대해 홍 회장이 불복한다고 밝히는 등 잡음은 점점 커지고 있죠. 마치 "남양유업 딜을 소재로 언제까지 딜 리뷰를 써야 할지 알 수 없다"고 했던 지난해 9월 딜리뷰가 예언이나 된 것마냥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번 딜리뷰에서는 남양유업 소송전을 지켜보며 궁금했던 대목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사진=연합뉴스

1. '김앤장의 쌍방대리' 주장, 일리 있나?

이번 소송전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건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쌍방대리 여부입니다. 김앤장은 매수측인 한앤코와 매도측인 홍 회장의 매매 법률자문을 맡았는데요, 홍 회장측은 "계약 전까지 김앤장이 양측 대리를 다 맡았다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이 계약을 맺기 전부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무효라는 논리입니다. 법조계에선 이에 대해 "앞서 법원이 홍 회장의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홍 회장측에선 계약 이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을 펴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쌍방대리를 김앤장이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쌍방대리(雙方代理)의 사전적 의미는 동일한 법률 행위에 관하여 계약당사자 쌍방의 대리인이 되어 계약을 체결하는 일입니다. 즉 매수인과 매도인의 대리를 동일한 행위자가 동시에 맡는 것을 매매계약시 금지한다는 건데요,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동산의 이전등기, 주식의 명의개서처럼 기존의 이해관계를 결제하는 차원의 채무 이행 계약은 쌍방대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권 매매계약 같은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에서 쌍방대리는 아주 큰 이슈가 될 수 있죠. 특히 이는 변호사법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점에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홍원식 회장측 소송 법률대리를 맡은 LKB앤파트너스(LKB)가 지난달 열린 가처분 심문기일에서 "김앤장의 쌍방대리"를 주장하며 홍 회장과 한앤코와의 계약이 무효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던 겁니다. 당시 LKB측은 "김앤장이 채권자(한앤코)측 도장이 날인돼있지 않은 계약서를 가져와 홍 회장의 도장을 날인한 뒤 가져갔기 때문에 법률자문이 아닌 법률대리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판사는 "계약과정에서 매수인, 매도인과 양측의 법률대리인까지 총 4명이 함께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법률대리인들은 "확인해보겠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궁금해서 김앤장의 해당 변호사들께 물었습니다. 홍 회장측 자문을 맡았던 A 변호사는 "홍 회장은 원래 직접 나서지 않고 재무 담당자, 비서 등을 시켜 일을 진행한다"며 "하지만 직접 홍 회장에게 김앤장이 양측 자문을 다 맡는다는 걸 수차례 얘기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한앤코측 자문을 맡았던 B 변호사도 "이미 양측의 동의를 받은 내용이고 매매계약의 법률 자문만 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쌍방대리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김앤장 얘기만 들으면 홍 회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홍 회장측에선 "홍 회장은 항상 직접 나서지 않고 아랫사람을 시키기 때문에 넷이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게 맞다"며 "홍 회장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만한 여러 정황 증거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쟁점은 '대리'냐 '자문'이냐에 달려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통상 M&A에서 법률자문을 맡은 변호사들이 매수인이나 매도인의 부탁으로 서류를 가져다가 본인의 도장을 받아오는 일은 자주 있다고 합니다. 연세가 많으시거나 바쁠 경우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 행위를 대리로 볼 것인지 자문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선 향후 더 공방이 예상됩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출처=한경DB

2. "300억은 더 받았어야 한다"는 계산은 어디서?

또 다른 쟁점은 한앤코와의 계약을 문제 삼은 홍 회장이 얼마 때문에 변심한 것인지 여부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계약 파기 소송의 원인'은 백미당 분사와 가족들의 임원진 예우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매매가격으로 연결되는데요, 지난달 열린 가처분 심문기일에서 홍 회장측 LKB 변호사는 "백미당 분사 및 임원 대우 약속을 한 것의 경제적 가치가 최소 연간 30억원이기 때문에 8년 임기로 계산하면 최소 300억원에 달하는 가치로, 이는 홍 회장에게 아주 중요한 이슈였지만 계약서에 반영이 안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300억원을 더 받지 못해 계약이 깨졌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에 대해 M&A업계 관계자는 "한앤코가 홍 회장에게 주당 82만원 조건을 주당 85만원으로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는데도 거절하고 주당 90만원에다가 8년 이상 고문료 지급을 고집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즉 매매주식 수 37만8938주에 주당 90만원을 곱한 3410억원에 경영권 포함 지분을 매각하고, 홍 회장의 연봉 15억원에 8년치 임금인 120억원까지 더한 총액 3430억원은 받았어야 했다는 주장입니다. 한앤코와 계약한 3107억원보다 323억원이 많은 금액입니다.

이를 놓고 "단지 몇백 억원 때문이 아니라 계약 이전 주가 40만원이 계약 이후 80만원대까지 순식간에 두 배로 뛰니까 아까운 마음이 든 것 아니겠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홍 회장을 잘 아는 M&A업계 한 관계자는 "돈도 돈이지만 창업주인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회사에만 평생 있던 사람이 노년에 할 일도 없고 허무하기 때문에 고문직 최소 8년을 요구한 것"이라며 "백미당보다도 임원진 예우 대목에서 마음이 틀어졌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열린 가처분 심문기일에서 홍 회장측 LKB 변호사는 홍 회장과 함춘승 피에이치앤컴퍼니 사장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죠. 함 사장은 한앤컴퍼니와 홍 회장을 연결시켜준 인물입니다. 이 문자에는 "최종본과 같이 우리 얘기한 가족. 내 것도 마무리지어야 최종 싸인되는 것이죠"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는 백미당 분사와 가족들의 임원진 예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LKB는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앤코측 최종 제안이라며 함 사장이 보낸 메시지에는 "주당 85만원으로 매수대금 상향 조정, 거래종결일을 7/15로 앞당김, 남양과 회장님(+특수관계인)간의 separation"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즉 주당 3만원을 더 올린 약 114억원을 더 주는 조건을 제시한 겁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임원진 예우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겁니다. 인수 후 통합(PMI) 과정에서 새 경영진을 임명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되팔아야 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입장에선 어쩌면 당연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 기존 경영진이 계속 남을 경우 기업의 밸류업엔 한계가 있거나 어려울 수 있고, 게다가 남양유업은 경영쇄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기업이어서 매물로 나온 특수 케이스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겁니다.

물론 "노년에 딱히 할 일도 없고, 소일거리 삼아 자신이 좋아하는 5회의실에 나오고 싶어했던 홍 회장 입장에선 8년 임기 보장을 안 들어준 것이 무엇보다 서운했을 것"이란 주장에도 일리가 있어보입니다. 그리고 대유위니아그룹과 93억원 더 많은 3200억원에 조건부 매매계약을 체결한 걸 보면 홍 회장과 한앤코 간 계약파기의 원인이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3. 홍원식 회장은 대유위니아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나

홍 회장이 대유위니아그룹과 조건부 SPA를 체결한 진짜 이유, 홍 회장과 대유가 각자 서로에게 얻을 수 있는 게 뭔지도 궁금한 대목입니다.

이에 대해 이번 딜을 잘 아는 M&A업계 관계자는 흥미로운 주장을 내놨습니다. "홍 회장이 한앤코와 소송을 앞두고 또 다른 매수자를 찾아나섰고 한앤코와의 소송비용(약 100억원) 정도는 대줄 수 있는 곳을 원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재무개선 경험이 많은 대유와 손을 잡았고 한앤코보다 93억원 더 높은 금액(3200억원)+알파로 계약을 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계약이 성사될 경우, 즉 한앤코와의 소송에서 홍 회장이 승소할 경우엔 그 시점에서 최소 3200억원에 대유에 경영권을 팔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시점에서 홍 회장이 원할 경우 기업가치 평가를 새로 한 뒤 더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알파)는 조건도 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홍 회장이 경영쇄신+경영권 매각에 여전히 뜻이 있다, 다만 한앤코와의 계약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서라도 또 다른 매수인과의 조건부 계약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유는 뭘 얻을 수 있을까요? 이 딜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남양유업은 제조기반이 탄탄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인데 다만 오너 리스크가 있었던 것뿐"이라며 "3000억~4000억원에 사는 거면 싸게 사는 거라고 대유측은 생각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한 가지 궁금증은 홍 회장과 대유가 맺은 계약의 계약금 320억원을 돌려주지 않기로 했을 것이란 소문(?)이 진실인지 여부입니다. 계약서를 직접 보지 않는 한 확실히 알 순 없습니다만, 여기저기 수소문해본 결과에 따르면 "특정 조건에 따라 계약금은 홍 회장이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달았을 것"이란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특정 조건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한앤코와의 소송을 치러야 하는 홍 회장의 당시 입장에선 수백 억원의 여윳자금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4. 가처분 소송 결과가 본안에 영향 미칠까?

결국 이 소송은 1) 홍 회장과 한앤코간의 계약에 애당초 문제가 있었느냐 2) 홍 회장과 대유위니아그룹간의 조건부 계약이 기존 계약의 배타적 협상권을 침해하느냐가 핵심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홍 회장측 소송 법률대리를 맡은 LKB는 1)번을 주장하면서 2)번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입장이고, 한앤코측 소송 법률대리를 맡은 화우는 1)번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2)번을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지난달 26일 열린 홍 회장과 대유간의 계약이행 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한앤코가 승소하며 분위기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입니다. 홍 회장은 이번 패소로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대유측과의 추가 교섭이나 협의, 정보 제공 등을 하지 못하게 됐죠. 또 대유는 남양유업의 경영에 관여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만약 이런 금지 조항들을 위반할 경우 홍 회장이 100억원의 간접강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결국 법원은 '대유와의 계약이 한앤코와의 계약에서 선행된 배타적 협상권을 침해했다'고 봤다는 얘기입니다. LKB는 "침해하지 않았다, 경영 자문일 뿐이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겁니다.

이로써 한앤코는 지난해 8월 홍 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 10월에 낸 홍 회장의 주주총회 의결권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에 이어 이번까지 총 세 번의 가처분 소송에서 모두 이겼습니다. 홍 회장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 됐죠.

그렇다면 앞선 가처분 소송들의 결과가 본안 소송(홍 회장과 한앤코와의 계약이행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여러 변호사들의 의견을 물었더니 "가처분 소송은 더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결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한앤코와의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 점이나 홍 회장이 제3자(대유)와 맺은 계약의 조기 이행을 금지한 판결은 본안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다수의 판단이었습니다.물론 재판이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수 있겠지만, 일단 현 상황이 한앤코에 유리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다음 홍 회장은 어떤 '카드'를 낼 수 있을지, 송무 전문 LKB는 어떤 주장을 펼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해집니다. 또 다시 남양유업 딜 리뷰로 찾아뵐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제보나 궁금한 점은 언제든 메일로 문의해주시길.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