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도 고열 견뎌낸 '도판 위 회화'를 만나다

한경갤러리 '도자회화' 특별전

오만철 교수와 제자 9명 작품
내달 3일까지 28점 선보여

회화의 세밀함+도자의 기품
다양한 형태 독특한 아름다움
전통적인 수묵화부터 컴퓨터 일러스트를 방불케 하는 선명한 색과 형상의 서양화까지…. 벽에 걸린 도자기 판마다 다채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회화의 세밀함과 도자 특유의 기품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7일 개막하는 ‘도자에 회화를 담아내다’전에 출품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는 30여 년간 도자회화의 길을 개척해온 오만철 작가(59·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 도자회화학과 겸임교수)와 그의 제자 9명이 백자도판에 그림을 그린 뒤 구워낸 작품 28점이 걸렸다.

도자회화는 평면의 백자도판에 그림을 그린 뒤 다시 구워내는 기법이다. 회화와 도예의 매력을 겸비한 데다 유약으로 마감해 수백 년간 색과 빛깔이 변치 않는다. 하지만 만들기가 극히 어렵다. 평평한 도자기 판은 굽는 과정에서 쉽게 변형되고 깨진다. 1250~1300도의 고온에 굽는 동안 크기는 제멋대로 줄어들고 물감은 변색되기 일쑤다. 가마 속 위치와 안료의 성질을 비롯해 수많은 변수를 숙지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홍익대 미대에서 동양화, 단국대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한 오 작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둘의 접목을 시도했다. 오 작가는 “스승은 물론 참고할 만한 자료조차 없어 도자기 위에 수없이 그림을 그리고 구워내며 10년 넘게 직접 데이터를 쌓아야 했다”며 “고령토와 도자의 본고장 중국 징더전(景德鎭)에 공방을 마련하고 각국에서 모인 도예가들과 교류하며 작업한 끝에 마침내 안정적인 제작 기법을 확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인정신과 예술혼이 깃든 한국적 미의 정수를 담은 그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등 각국의 미술 중심지에서 여러 차례 초대전을 열었고, 지난해 11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립예술원에 초청돼 각국 대사와 현지 예술가들 앞에서 도자회화 제작 시연 등을 펼쳤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달항아리 그림을 담은 ‘반추-달항아리’ 연작 두 점을 선보인다. 오 작가는 “달항아리라는 옛것을 거울 삼아 새로운 장르인 도자회화 작품을 창작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함께 작품을 내놓은 제자들은 스승이 수없는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쌓은 노하우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장정은 작가의 ‘Violet’은 서울 도심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표현한 작품이다. 옻칠과 나전 등 전통 재료를 이용해 도자회화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화려한 색채를 냈다. 최원선 작가는 판화의 에칭 기법을 접목해 그린 세밀화 ‘경회루 측면’을, 유혜원 작가는 일필휘지의 기운을 담은 동양화 ‘Variations’를 도자판 위에 선보인다.독특한 이력의 작가들도 눈에 띈다. 의료기기 제조업체 비멤스의 대표인 주경석 작가가 한글을 주제로 제작한 ‘훈민정음 BG100’에서는 정교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치과의사이자 애묘인인 황지숙 작가는 뛰어난 손재주로 치과에서도 친숙한 소재인 금을 활용해 정교한 고양이 그림 ‘같이’를 그려냈다.

정혜은 작가는 도자기 판을 직접 제작한다. 덕분에 그의 작품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거예요’에서는 도자기 표면의 울퉁불퉁한 질감과 그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김미경 작가의 ‘청송’과 김은경 작가의 ‘연과 물방울’, 추소민의 ‘모든 게 우린 거야_1’ 등에는 한국적 채색화의 은은한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눈이 쏟아지는 설산을 화려하게 표현한 박다연 작가의 ‘내려오다’, 다양한 색채로 새들의 모습을 아기자기하게 담은 이영화 작가의 ‘조화로운 삶’도 주목할 만하다. 전시는 다음달 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