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포퓰리즘 솎아내는 세 가지 기준

공정 이름으로 쏟아지는 선심정책
예산 고려없이 공짜 단맛 중독시켜
지속성장·통합 이끌 공약 고민해야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마다 한 표라도 더 얻어보려는 정책공약들이 어지럽게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공약들은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다. 프랑스 시민혁명 이래 최근까지 모든 정치체제의 가장 근본적인 덕목으로 공정성이 자리잡았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인류사회의 구조가 운명적으로 매우 불평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모든 인간들은 출생 시점부터 불평등한 유전자와 양육환경에 의해 뛰어넘기 힘든 불평등한 조건을 안고 시작한다. 이런 운명적으로 불평등한 구조에서, 모두가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정한 사회와 경제는 인류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본조건으로 자리잡았다.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공정성 개념이 정치적으로 민감해진 우리나라이기에,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표심을 사기 위한 다양한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이렇게 쏟아지는 선심 공약 덕분에 심각한 수준에 달한 사회적 분열이 아물고 사회통합으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목전에 닥친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에만 집착한 나머지, 중장기적인 정책효과를 고려하지도 않는 포퓰리즘의 해악은 중남미뿐만 아니라 트럼프 이후 미국 사회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 공정성의 이름으로 다양한 선심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은 포퓰리즘으로 기울어버린 중남미 국가들의 판박이다. 그 어떤 선거보다도 혼란스러운 작금의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포퓰리즘 정책들을 판별해내는 안목을 가질 때, 대선 후보들은 ‘묻지마 선심성 공약’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포퓰리즘을 판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즉 국가의 예산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대목에서 돈을 찍어서 지원하겠다는 공약은 틀림없는 포퓰리즘이다. 소요예산도 고려하지 않은 ‘청년 원가주택 공급’이나 ‘250만 가구 신규주택 공급’ 공약부터 ‘탈모치료제 건강보험적용’ 공약 등이 전형적인 예다. 현재 가용한 자원이 어느 정도인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한 뒤 어떤 원칙과 순서에 의해 예산을 배분해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들부터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설득한다면, 이는 포퓰리즘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다.

포퓰리즘을 판별하는 두 번째 기준은 올바른 유인동기(incentive)를 제공하는가이다. ‘모든 군 사병 월급 200만원’ 공약부터 ‘청년기본연금’ 공약까지, 소위 2030세대 유권자들을 향한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예산제약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도 낮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에게 의욕적인 자기개발과 혁신동기를 제공하기는커녕, 공짜에 중독시킬 것이란 우려가 크다.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유권자에게 더욱 적극적인 기업가정신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공짜의 단맛만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은 포퓰리즘의 확실한 증거다.

마지막으로 논리적 일관성을 포기한 공약도 포퓰리즘의 확실한 증거다. ‘부유층을 포함한 모든 가구에 대한 노인복지 및 육아지원’ 공약과 ‘기본소득’ 공약들이 복지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꿈꾸는 복지정책은 적극적인 소득재배분정책이 그 기본이다. 따라서 사회취약계층과 소외계층뿐만 아니라, 부자들과 기득권 계층도 똑같이 복지정책의 수혜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공약이 발견되면, 이는 명백한 포퓰리즘의 징표다.

유권자들이 이런 얄팍한 포퓰리즘 전략을 쉽게 판별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권력에 눈이 먼 대선 후보들이 당장의 집권이 아니라,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진정한 공약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포퓰리즘에 연연해하는 대선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채찍을 들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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