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추경 증액 반대는 홍남기 월권"이란 與 주장이 월권이다

거대 여당 대선 후보와 국회의원들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맹폭격하고 나섰다. “백성이 굶어죽든 말든 자기만 잘살겠다는 탐관오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극언을 퍼붓고 ‘탄핵’ ‘해임’까지 거론했다.

14조원 규모로 국회에 제출돼 있는 ‘1월 추경’을 ‘35조원 이상’으로 대폭 늘리자는 요구를 무시했다는 게 여권이 격앙한 이유다. 홍 부총리는 지난 주말 국회에 출석해 “정부가 제출한 규모 선에서 추경 논의가 되는 게 적절하다”며 대폭 증액에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여야가 증액에 합의하면 따르겠느냐”는 질문에도 “저는 쉽게 동의하지 않겠다”며 모처럼 결기를 보였다.국회가 먼저 제기해서 마련된 초유의 ‘1월 추경’안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지 2주 정도에 불과해 너무도 당연한 답변이다. 그런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부총리의 월권” “대의민주주의 부정”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어제 단체로 기자회견을 열어 홍 부총리 발언은 ‘민생 능멸’ ‘국민 무시’라며 거칠게 공격했다.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월권이자 반(反)민주라는 주장은 번지수가 한참 틀린 것이다. 헌법은 예산편성권(56조)과 증액 시 동의권(57조)이 정부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기영합적으로 흐르기 쉬운 국회가 나랏돈을 제 돈처럼 낭비할 위험을 전문성 높은 관료집단이 잘 견제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예산에 관한 헌법상 국회 권한은 ‘심의·확정권’으로 제한돼 있어, 월권한 사람은 홍 부총리가 아니라 여당 의원들이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역시 국민이 뽑았다는 점에서 ‘국회가 국민의 유일한 대리자’라는 식의 주장도 옳지 않다.

인플레이션 억제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지금은 유동성 확대에 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14조원 추경이 확정되자마자 국고채 물량이 쏟아질 것이란 우려로 시장금리가 급등한 점을 여당 의원들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무차별 현금 살포는 나눠준 지원금보다 더 큰 이자부담을 자영업자와 가계에 씌우는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국회는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작년 7월 통과시켰고, 그에 따라 올 예산안에 3조2000억원의 손실보상예산이 편성돼 있다. 그 돈을 쓰지도 않고 ‘1월 추경’을 들이민 것도 모자라 확정된 규모를 2.5배 이상으로 늘리자는 주장은 비상식적이다. 누군가를 적으로 몰고 감언이설로 국민 환심을 사는 저급한 정치도 정도껏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