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에 기름 부었다"…HDC현산에 뿔난 뉴타운 삼호 조합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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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현산, 사고 이후 '역대급 조건' 내걸어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위기에 몰렸던 HDC현대산업개발이 사고 후 첫 수주에 성공하며 기사회생 발판을 마련했다. 다만 높아진 조합원들 눈높이를 향후에도 맞춰줄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경기 안양 관양현대 재건축사업 수주
인근 현산 사업지 "총회서 시공사 교체 논의"
향후 수주전 예정지도 "관양현대 조건이 기준"
업계 "HDC현산 부담 증가 불가피"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HDC현산은 경기 안양시 관양 현대아파트 재건축 사업 시공사로 선정됐다. 지난 5일 시공사 선정 총회에는 조합원 959명이 투표에 참여해 과반인 503명(53.1%)이 HDC현산을 선택했다.관양 현대 재건축은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1396번지 일대 6만2557㎡를 대상으로 지하 3층~지상 32층, 공동주택 15개동, 1305가구와 부대복리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총 공사비는 4240억원 규모다.업계에선 HDC현산의 수주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사업 조건을 제시한 덕분으로 보고 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재산과 목숨을 현산에 맡길 수 없다" 등 현수막이 붙을 정도로 HDC현산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지만 '외면하기 어려운 조건'이 제시됐다는 것이다.
HDC현산은 사고 전부터 관양 현대아파트 재건축 조합에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으로 사업비 2조원을 조달해 이주비를 지급하고, 조합원에 세대당 7000만원의 사업추진비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후분양으로 3.3㎡당 4800만원의 일반분양가도 보장했고, 세계적 건축 디자인그룹 smdp와 함께 스카이 브릿지 등이 포함된 조감도를 제시했다.사고 후에는 유병규 HDC현산 대표가 조합에 자필 사과문을 보냈고 관리처분 총회 전 시공사 재신임 절차, 안전결함 보증기간 30년 확대, 외부 전문 안전감독관 업체 운영 비용 부담 등의 조건을 추가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HDC현산이 '보이콧'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내부 비용을 늘려 조합원 이익을 극대화한 것으로 풀이했다.다만 다른 사업지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HDC현산이 관양 현대아파트 재건축 사업 수주에 공을 들인 결과 역차별을 당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관양 현대아파트에서 약 800m 거리에 있는 뉴타운맨션삼호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대표적이다.
뉴타운맨션삼호 재건축은 안양 동안구 비산동 354번지 일대 11만8751.9㎡에 지하 3층~지상 31층 공동주택 2618가구와 부대복리시설 등을 신축하는 사업이다. 총 공사비는 5165억원. 2016년 HDC현산이 수주한 이 사업은 지난해 12월 이주를 마치고 다음달 철거를 앞두고 있다.철거를 앞둔 시점이지만 뉴타운맨션삼호 조합은 내달 말로 예정된 총회에서 시공사 재선정안을 상정해 논의할 계획이다. 조합원 사이에서 HDC현산에 대한 불만이 높아진 탓이다. 처음에는 안전 우려로 인한 불만이었지만 지금은 감정 문제로 번졌다는 설명이다.
주원준 뉴타운맨션삼호 조합장은 "안전문제도 있지만 HDC현산이 관양 현대에서 한 발언들과 제시한 조건들도 문제"라면서 "HDC현산이 (뉴타운맨션삼호) 조합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말했다.HDC현산이 뉴타운맨션삼호와 관양 현대아파트에 제시한 안에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관양 현대아파트는 3.3㎡당 4800만원의 일반분양가를 보장받으며 무상입주가 가능해졌지만, 3.3㎡당 일반분양가 2500만원인 뉴타운맨션삼호는 가구별로 2억5000만원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지원금도 관양 현대보다 6000만원 적은 1000만원에 그친다. 일반 설계가 적용되는 부분이나 물가상승분 반영 시기, 가전·가구 제공 수준 등에서도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
주 조합장은 "관양 현대가 얼마 안 떨어진 같은 동네에 있다보니 조합원들이 불편해한다. 그래도 시공사 선정 시점이나 공사비에 차이가 있으니 감안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 부분"이라며 "그런데 HDC현산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조합에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관양 현대만 바라본다'거나 '관양 현대에 제시된 사업 조건은 뉴타운 삼호에 비밀' 따위의 말을 흘리니 조합원들이 격해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따져물었다.그는 "시공사를 교체하면 사업이 지연되고 소송도 이어지는 등 부담이 크다"면서도 "조합원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르면 내달 말, 늦어도 4월 초 총회에서 시공사 재선정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수주전이 예정된 지역에서도 관양 현대아파트에 제시된 조건이 판단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HDC현산은 이달 말 서울 노원구 월계 동신아파트 재건축 시공권을 두고 코오롱글로벌과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월계 동신아파트 한 조합원은 "HDC현산 직원들이 오가며 사고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하자보수 기간을 30년으로 늘린다는 등의 설명을 하고 있다. 관양 현대에 제시한 조건과 비교해 판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HDC현산이 관양 현대아파트에 제시한 조건은 기존의 예상 수익률을 포기하고 내부 비용을 크게 늘린 결과일 것"이라며 "한 두 번이면 몰라도 앞으로 계속 같은 조건이 된다면 HDC현산에게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