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코로나 쇄국'에…외국기업 투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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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외국인 입국 규제일본 정부가 2년 넘게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는 ‘코로나 쇄국정책’을 펴면서 경제 전반에 걸쳐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외국 기업이 투자를 보류하거나 영업에 지장을 겪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쇄국정책이 계속되면 해외 인재는 물론 투자 수요까지 일본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비즈니스 방문자 90% 줄어
엔지니어 등 필수인력 부족
지멘스, 신규투자 보류
보쉬, 신제품 라인 가동 중단
G7 유일의 ‘코로나 쇄국’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독일 지멘스는 일본 기계 관련 기업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일부 신규 투자 안건도 보류했다. 지멘스 일본 법인의 임직원들이 일본 정부의 규제로 출입국을 못하고 있어서다. 지멘스 일본 법인 임직원의 10~15%가 외국 국적자다. 지멘스 일본 법인 관계자는 “일본 시장에 대한 성장 전망도 재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독일 보쉬도 사이타마현에 있는 자동차 부품 공장의 신제품 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외국 국적의 임직원 31명과 가족 37명이 입국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 제조업체 포레시아 클래리온 일렉트로닉스도 모회사인 프랑스 포레시아가 파견하려던 임원과 엔지니어의 10%만 일본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1년 1월부터 외국인의 일본 입국을 전면 중지했다. 사업 목적의 방문과 유학생, 기능실습생의 입국까지 장기간 제한해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작년 11월 초 입국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하지만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같은 달 말 다시 전면 입국 금지로 돌아섰다.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12월 신규 외국인 입국자는 2783명으로 1년 전보다 95% 급감했다. 주요국 가운데 외국인 입국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2021년 1~10월 사업 목적으로 일본에 입국한 외국인의 숫자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90% 감소했다. 코로나19 확산 첫해였던 2020년보다 감소폭이 더 커졌다. 사업 목적의 입국자 감소폭이 2020년 80%에서 지난해 60%로 크게 줄어든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쇄국 상태가 계속되면 인재와 자금의 일본 이탈이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학생 입국을 중지한 부작용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도쿄대 히토쓰바시대 교토대 도호쿠대 와세다대 등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대 존스홉킨스대 미네소타대와 호주국립대를 비롯한 호주의 여러 대학, 캐나다 마길대 등이 올봄 교환학생 파견을 중지하겠다고 일본 대학 측에 통보했다. 일본의 외국인 입국 규제 탓에 유학생을 교환하는 본래 취지가 훼손됐다는 이유에서다.
재계도 정부 정책 정면 비판
아르바이트생의 30%를 유학생에 의지해 온 한 대형 이자카야 체인은 심야영업을 중단했다. 외국인 정보기술(IT) 인재를 일본 기업에 파견하는 휴먼리소시아는 “인도 등 약 200명의 IT 인재가 일본으로 입국하지 못하자 일부 엔지니어들이 일본행을 포기했다”고 전했다.2021년 1~11월 신규 유학생 입국자는 1만1000명으로 2019년보다 90% 줄었다. 반면 미국국제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9월~2021년 8월 미국을 찾은 신규 유학생은 14만5000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9월~2019년 8월(26만9000명)에 비해 50%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일본 입국이 막힌 외국인들은 최근 SNS를 통해 ‘스톱 재팬스 밴’(Stop Japan’s Ban·일본 입국금지를 중단하라)이란 단체를 만들어 각국 일본대사관 앞에서 입국 허용을 촉구하는 항의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중순 말레이시아 몽골 인도 폴란드 독일 등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유학생과 기업 관계자 주도로 일본 정부의 입국 규제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일본 재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의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은 지난달 2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의 입국 규제를 “쇄국정책”이라고 비난하며 조속한 철폐를 촉구했다.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재정자문회의 고정 멤버로 전통적으로 일본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게이단렌 회장이 정부 정책을 정면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일본의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 운영사) 회장도 작년 말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쇄국을 계속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