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는 실종, 영상미만 남은 추리극…영화 '나일강의 죽음'

추리 영화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서스펜스와 쾌감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마치 실처럼 용의자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도, 명탐정이 실마리를 잡은 뒤 문제를 하나씩 풀어갈 때는 관객이 저절로 무릎을 '탁' 치며 희열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나일강의 죽음'은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보기 어려울 듯하다.

관객을 초조하게 만들지 못하는 데다 '누가 범인일까'라는 궁금증은 대사 몇 줄로 맥이 빠지듯 풀린다.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 모습을 담는 데 러닝타임 절반가량을 할애한 구성도 추리 영화 공식을 벗어나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인기작 '에르퀼 포와로' 시리즈가 원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랫동안 실사 영화를 기다려온 관객을 만족시키기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오리엔트 특급살인'(2017)에 이어 탐정 포와로 역을 맡고 감독도 겸한 케네스 브래나는 연기와 연출 모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포와로는 휴가차 이집트에 갔다가 친구 부크(톰 베이트먼 분)를 우연히 마주치고, 신혼여행 중인 리넷(갈 가도트)과 사이먼(아미 해머) 부부를 소개받는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리넷은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사이먼과 사랑에 빠져 단 몇 주 만에 결혼한 상태다.

게다가 사이먼은 리넷의 절친한 친구 재클린(에마 매키)과 약혼했던 사이기까지 하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 재클린은 부부가 가는 곳을 내내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부부는 재클린이 더는 따라올 수 없도록 유람선을 빌려 신혼여행에 초대한 사람들을 모두 부른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재클린은 유람선에 몰래 타 권총으로 사이먼의 다리를 쏜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던 그날 밤, 리넷은 누군가에 의해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된다.

포와로가 배에 탄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보니 의심 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리넷은 돈이 많았던 만큼 원한을 산 사람도 많았다.

이후 결정적 키를 쥔 것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진다.
명탐정 포와로는 매우 빠르게 범인을 잡아낸다.

남다른 관찰력과 논리로 범인들을 꼼짝 못 하게 한다.

그러나 그의 추리 과정에서 관객은 소외된다.

작은 단서들을 여럿 던져주고 관객이 함께 추측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밀고 당기기가 부족하다.

관객은 속사포처럼 추리한 내용을 쏟아내는 포와로의 대사를 가만히 들을 뿐이다.

이집트의 신비롭고 이국적인 풍광을 담은 영상미만큼은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

거대한 피라미드와 사막, 나일강을 품은 자연 곳곳을 비추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는 9일 개봉. 상영시간 126분. 12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