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1월 CPI 물가는 폭탄 or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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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갑자기 차분해졌지만, 속내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오는 10일 아침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CPI) 발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Fed의 긴축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시장은 올해 들어 큰 폭의 조정을 겪어왔다. 제롬 파월 의장은 데이터에 의존해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해왔는데, 가장 중요한 데이터가 바로 1월 CPI"라고 말했습니다. 통상 Fed가 가장 중요시하는 물가 데이터는 개인소비지출(PCE), 특히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 물가입니다. 이 관계자는 "PCE 물가는 월말에 나오지만, CPI는 월초에 발표되기 때문에 물가 흐름을 먼저 알 수 있다. Fed도 여러 데이터를 다 보고 있다"라면서 "1월 CPI가 Fed 긴축 경로와 증시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웰밍턴트러스트의 루크 틸레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이르고 떨어지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시장이 예측하는 것만큼 Fed가 금리 인상에 대해 공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3월, 4월, 5월에 이르면 기저 효과가 전년 대비 수치를 낮추는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겁니다. 만약 2, 3월에 그런 수치가 확인된다면 Fed가 긴축을 서둘 필요가 없어집니다. 증시도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신호가 6, 7월에 나온다면 그 전에 Fed는 벌써 두 세 차례 금리를 올리고, 대차대조표 축소(QT)를 시작했을 수 있습니다. 미국 경제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다를 겁니다. 바이탈날리지의 애덤 크리사펄리 설립자는 "지난 금요일 폭발적 고용보고서를 증시가 잘 흡수해 오르면서 Fed의 긴축이 시장에 대부분 반영됐다는 낙관론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기 보다는 낮게 나와 강력한 반등 랠리를 일으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낙관론에 뛰어드는 걸 주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CPI 수치가 매우 유동적일 것이란 뜻입니다.
내셔널증권의 아트 호건 수석 시장 전략가는 CNBC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수치는 순차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월 단위로 CPI를 보기 시작할 때다. 좋은 방향으로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1월 헤드라인 CPI가 여전히 연간 7.2%의 뜨거운 수치가 될 것"이라면서도 "전월 대비로는 12월 0.5%보다 낮은 0.4%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인플레이션 움직임이 나온다면 계시적일 것이다. 월가의 매파적 어조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전달 대비 헤드라인 0.5% 상승(12월 +0.5%), 근원은 0.52%(12월 +0.6%) 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 전년 대비로는 헤드라인 수치가 7.3%(12월 +7.0%), 근원 수치는 5.97%(12월 +5.5%) 상승할 것으로 봅니다. 전반적으로 월가 컨센서스보다 조금씩 높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우리의 예측은 중고차 경매 가격의 추가 상승 및 이에 따른 신차 가격 상승 압력을 반영한다. 또 의료 서비스, 의약품과 일부 소비자 서비스 카테고리의 연초 가격 인상으로 인한 상승도 포함한다. 다만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호텔 및 항공료 가격은 하락했다. 주거비의 경우 임대료 +0.39% 및 집주인의 OER +0.40%를 예상한다. 의료보험 가격도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식료품 가격 상승도 반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ING는 헤드라인 7.3%, 근원 5.9%를 예상하면서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극심한 인력 부족으로 인해 많은 직원이 결근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는 물가가 더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크레셋캐피털의 잭 아블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소화하기 매우 어려운 인플레이션 수치를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시장을 무릎 꿇게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의해야 할 건 지난 10번의 CPI 발표 중 8번 월간 헤드라인 수치가 월가 컨센서스를 상회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가 압력은 심각하고요. 이날 미 국방부가 인플레이션 때문에 2023년 예산 추정을 늦추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CPI는 달러 가치에도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최근 ICE 달러인덱스는 97까지 올랐다가 지난 3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긴축 신호를 보낸 뒤 95선에 머물고 있습니다. 크레딧아그리콜의 발렌틴 마리노프 전략가는 투자 메모에서 "외환 투자자들이 Fed 정책 경로에 대한 명확성을 기다리면서 잠시 모멘텀을 잃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앞으로 미국 CPI와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달러 랠리가 되살아나려면 상당히 높은 인플레이션 서프라이즈와 매파적 FOMC 신호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은 대부분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씨티는 올해 하반기에 브렌트 가격이 18~20% 떨어져 배럴당 60달러 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2분기에 공급 증가로 인해 재고가 늘면서 유가가 떨어질 것이란 관측입니다. 반면 Fed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으로 수요 회복세는 지금 예상보다 느려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월가에서는 단기적으로 두 가지 이벤트를 주시합니다. 첫 번째는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련 갈등 수위를 낮출 수 있을지 여부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 중 일부는 향후 공동 조치의 기반이 될 수 있겠다. 회담이 유용하고 실질적이며 실무적이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란 핵 협상 진전 상황입니다. 미국 등 서방과 이란 간의 핵 협상은 8일 재개됩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 5일 외국 정부나 기업이 이란의 부셰르 원자력발전소와 아라크 중수로 등의 민간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란 제재에 나선 뒤 첫 유화적 조치입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