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58조·미국 62조…더욱 치열해지는 '반도체 패권 전쟁'

EU "반도체 점유율 현재 9%에서 2030년 20%까지 올리겠다"
'EU 반도체칩법' 제정해 58조원 투자
미국도 62조원 투자해 반도체 생산기지 유치 노력
인텔 TSMC 등 각국 정부 지원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세계 국가들의 반도체 패권 전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 TSMC 등 반도체 기업이 있는 아시아 지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 인텔과 대만 TSMC 등 경쟁기업들은 이들 국가의 투자 혜택을 가져오기 위해 각국 정부와 긴밀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EU, 430억 유로 반도체에 투자

8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EU(유럽연합)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유럽에서 반도체 공급을 대폭 늘리기 위한 수백억 유로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놨다. EU 집행위는 이날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에 대응하고 미국과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EU 반도체칩법'(EU Chips Act)을 제안했다. EU 집행위는이 법을 통해 현재 9% 수준인 유럽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EU는 430억 유로(약 58조9000억원) 이상의 공공·민간 투자를 동원할 계획이다. 기존 EU 예산에 추가로 150억 유로(약 20조5000억원)의 투자를 추가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 같은 목표는 국제적 수요 급증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기존에 해오던 것보다 4배 더 노력하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520억 달러 반도체 투자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을 통과한 '미국 경쟁법안'(America COMPETES Act)도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증대를 목적으로 520억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 상원은 지난해 6월 중국 견제 등의 목적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에 520억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의 '미국혁신경쟁법안'(USICA·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번에 미 하원을 통과한 미국경쟁법안은 상원으로 송부돼 미국혁신경쟁법안과의 협의 조정 과정을 거쳐 이르면 올해 1분기 중 최종 통과될 전망이다.

전미반도체협회(SIA)는 520억달러(62조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향후 10년 동안 미국 내 19개의 생산시설이 세워지고, 신규 글로벌 생산역량의 24%를 미국이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국제 반도체 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0%에서 13∼14%로 늘어나게 된다.

반도체 기업들, 각국 정부와 협력 강화

전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이같은 각국 정부의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인텔은 지난해 9월 110조원을 투자해 유럽에 반도체 공장을 2개 세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인텔의 신공장은 유럽 자동차 기업들에 공급하려는 차량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할 전망이다.이탈리아와도 최대 80억유로(약 10조7652억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이 향후 10년간 유럽에 800억유로의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금액의 10%에 해당한다.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에 소니와 합작해 파운드리 공장을 설립한다. TSMC 일본 공장에는 4000억엔(약 4조1520억원)에 달하는 정부 자금이 지원된다. TSMC의 일본 공장에는 1500명의 직원이 고용될 예정이다. 2024년부터 반도체 생산에 들어간다. 22~28㎚(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을 적용한 반도체가 생산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기업들이 각국 정부의 반도체 투자의 과실을 따먹고 있다는 점에서 긴장을 끈을 늦출수 없다고 보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도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20조원)를 들여 파운드리 2공장을 지으면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긴 하다. 하지만 인텔과 TSMC 등의 투자 규모와 속도를 따라가기엔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반도체 투자 지원금액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여전히 정치권에선 반도체 투자 혜택이 대기업으로 편중된다는 점을 들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