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웅 감독 "명문구단 공든 탑 무너질까…각성해야 한다"

3세트 중반까지 팽팽하게 싸우던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연거푸 범실을 하자 최태웅(46) 감독은 작전 시간에 "정말 부끄럽다"고 했다.

다른 작전 지시는 없었다. 현대캐피탈은 9일 경기도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도드람 2021-2022 V리그 남자부 방문경기서 KB손해보험에 세트 스코어 0-3(15-25 23-25 21-25)으로 완패했다.

경기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최 감독은 침울한 표정으로 "명문 구단으로 우리가 쌓은 성과가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는데…"라며 "그런데 그렇게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겁이 난다.

나와 선수들 모두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선수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우리 팀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와 자세로 패했다"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현대캐피탈은 전통의 명가다. V리그가 출범한 2005시즌을 포함해 5차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4차례 달성했다.

최태웅 감독이 부임한 2015-2016시즌부터는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두 번씩이나 하는 성과를 냈다.

현대캐피탈은 2020년 11월 베테랑 센터 신영석과 세터 황동일, 국군체육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김지한을 한국전력으로 보내고, 세터 김명관, 레프트 이승준 등 젊은 선수와 2021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으며 '본격적인 리빌딩'을 시작했다. 2020-2021시즌 현대캐피탈은 7개 팀 중 6위에 그쳤다.

리빌딩을 위해 감수해야 할 성적이었다.

최 감독은 올 시즌부터 성과를 내고 싶어했다.

현대캐피탈은 9일 패하면서 6위로 내려앉았다.

V리그 남자부는 4위부터 7위까지 승점이 36으로 같은 유례없는 순위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4위까지는 올라설 수 있다.

그러나 3위 우리카드(승점 45·13승 15패)와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최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로 경기를 풀어가길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를 줄였는데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며 "나도, 선수들도 더 정신 차려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은 외국인 선수의 도움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9일 경기에서도 펠리페 알톤 반데로(등록명 펠리페)가 1세트 중반, 허벅지 통증을 호소했다.

펠리페는 단 2득점만 하고 웜업존으로 이동했다.

현대캐피탈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뽑은 보이다르 뷰세비치와 시즌 개막 전에 작별하고, 로날드 히메네즈는 잦은 부상으로 떠나보냈다.

새로 영입한 펠리페도 6경기에서 72득점에 그쳤다.

최태웅 감독은 "펠리페가 '경기에 뛸 수 있다'고 해서 내보냈는데 더 악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찌감치 불러들였다"며 "이번 시즌에는 정말 외국인 선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털어놨다.

국내 선수도, 외국인 선수도 최태웅 감독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최 감독은 자신도 냉정하게 돌아봤다.

최 감독은 배구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때론 모험적인 선택도 한다. 현재를 '위기'로 진단한 최 감독은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