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부르는 왈츠의 향연…카라얀의 빈필 신년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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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의 명반 순례올해도 빈 무지크페라인잘 황금홀에서 빈필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였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이 공연의 실황 음반은 이달 발매돼 애호가의 손에 들어온다.
빈필 신년음악회 무대의 기원은 1939년 12월 3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빈필 최후의 상임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가 지휘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특집 오전 음악회다. 크라우스는 이듬해인 1940년 마지막 날과 1941년 첫날에도 왈츠와 폴카를 연주했는데, 이것이 제1회 빈필 신년음악회다.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1945년을 제외하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열렸다.크라우스가 14년 동안 신년음악회를 지휘한 이래 그 중간에 요제프 크립스가 두 차례 지휘봉을 잡았고, 1955년 빈필 악장인 빌리 보스코프스키가 지휘를 맡으면서 신년음악회는 유명해졌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7년간은 빈 국립오페라 총감독 로린 마젤이 지휘했다. 1987년 이후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시작으로 빈필이 신임하는 명지휘자를 초청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2회), 클라우디오 아바도(2회), 주빈 메타(5회), 리카르도 무티(6회), 로린 마젤(11회),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2회), 오자와 세이지·마리스 얀손스(3회), 조르주 프레트르(2회), 다니엘 바렌보임(3회), 구스타보 두다멜, 크리스티안 틸레만, 안드리스 넬손스, 프란츠 벨저 뫼스트(2023년까지 3회) 등이다.
빈 신년음악회 실황은 모두가 명연급이라 한 장을 뽑기가 쉽지 않다. 클라이버와 카라얀이 쌍벽을 이룬다고 보는데, 처음이자 마지막 신년음악회 지휘인 카라얀의 실황을 선택한 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봄의 소리’ 왈츠를 부르는 전성기의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쥐 서곡’에서 라데츠키행진곡까지(영상물의 실제 공연 실황은 첫 곡이 집시 남작 서곡이다. 당시 LP에 담기 위해 곡 순서가 변경돼 발매됐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 카라얀의 빈 왈츠에 대한 감각은 탁월하다. 오케스트라 콘서트의 앙코르로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순한 ‘피치카토 폴카’를 들어봐도 ‘과연 카라얀!’ 하고 그 미감에 감탄하게 된다.
타계 2년 전인 당시 연주를 함께한 빈필은 카라얀의 마음을 받아준 동반자였다. 1982년 여성 클라리넷 주자 자비네 마이어 입단을 빌미로 베를린필 단원들이 반기를 든 이후 거장의 진정한 음악적 동반자는 빈필이었다. 마지막 연주여행과 마지막 콘서트도 빈필과 함께했다.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카라얀의 빈 신년음악회 최초 지휘 소식은 1985년 발표됐지만 1987년 1월 1일 지휘대에는 우여곡절 끝에 올랐다. 4개월 전인 1986년 9월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입원해 12월까지 여러 콘서트를 취소하는 등 병환으로 인한 불안감이 커졌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암암리에 대타 지휘를 위해 대기 중이었고, 콘서트 직전인 12월 29일까지도 체력 유지가 힘들 것 같다고 말하는 불안한 카라얀을 설득해야 했다고 전해진다.
오스트리아 농촌 민속춤인 랜틀러에서 나온 왈츠가 어떻게 신년음악회를 장식하게 됐을까. 힐링의 음악이어서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빈 시민을 위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가(家)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의뢰한 곡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다. 얼음 밑에서 도도히 흐르는 도나우처럼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유유히 헤쳐나가길 바라는 이 곡은 빈의 상징이 됐다.
코로나19로 2년 넘게 고생하고 있지만 단원들의 ‘하! 하! 하!’ 소리가 유쾌하고 시원한 ‘근심 걱정 없이(Ohne Sorgen!)’ 폴카 같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