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끝나지 않은 '풋옵션 분쟁'

1심 "풋옵션 가치 조작 근거없다"
어피너티·안진 임직원 5명 무죄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 대한 풋옵션(투자자가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 가치를 부풀린 혐의로 기소됐던 사모펀드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임직원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풋옵션 가치 산정을 맡았던 딜로이트안진이 어피너티에 유리하도록 가격을 무리하게 산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지난해 어피너티와의 국제중재재판에서 승기를 잡았던 신 회장 측이 이번엔 뜻밖의 일격을 당한 셈이다. 교보생명이 올 상반기를 목표로 추진 중인 기업공개(IPO) 작업에도 일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양철한)는 10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딜로이트안진 임직원 3명, 어피너티 컨소시엄 임직원 2명 등 5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교보생명의 풋옵션 가치 평가 과정에서 기업의 공정시장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사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1년~1년6개월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딜로이트안진 회계사들이) 전문가적 판단 없이 어피너티에 유리한 방법으로 가치를 평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교보생명 "판결과 무관하게 IPO 예정대로"
상반기 목표로 패스트트랙 신청…소송 탓에 상장 예비심사 미뤄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사진)과 어피너티 컨소시엄 간 ‘풋옵션 분쟁’이 또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난해 국제상공회의소(ICC)의 중재 판정에서 신 회장이 승기를 잡았지만 분쟁을 최종적으로 끝낼 수 있는 마지막 단추인 기업공개(IPO) 절차가 이번에 어피너티 측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은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IPO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상장 심사를 진행 중인 한국거래소가 주주 간 분쟁을 들어 까다로운 평가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IPO를 통해 재무적 투자자(FI)들에게 투자금 회수(엑시트) 기회를 제공하고,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매듭짓겠다는 취지였다. 상장 시 기업가치는 3조~5조원이 될 것으로 시장에서는 평가하고 있다.교보생명은 당초 올 상반기를 목표로 패스트트랙(신속심사제도)을 신청했으나, 거래소는 기일 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절차를 미뤄왔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르면 상장하려는 기업은 ‘회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송 등 분쟁 사건’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딜로이트안진과 어피너티 관계자들에 대한 이번 선고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되면서 교보생명의 IPO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법원이 FI 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놓으면서 향후 법적 분쟁이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날 어피너티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이미 1차 중재 판정에서 FI 측의 풋옵션 유효성을 인정받은 데다 이번 형사재판에서도 FI가 행사한 풋옵션과 제출한 보고서가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라며 “2차 중재를 통해 양측 간 풋옵션 분쟁을 매듭짓겠다”고 강조했다.

IPO 자체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교보생명은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IPO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K-ICS(신지급여력제도)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금융지주사 전환 준비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어피너티 컨소시엄도 “상장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IPO 작업과 관련해서는 교보생명 측과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한국거래소도 이번 판결만으로 상장 심사가 불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무죄 판결이 회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기보다는 신 회장의 경영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봤다”며 “당장 심사를 멈출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양측의 분쟁이 장기화되는 것이 지배구조에 악영향을 주는 만큼 상장 시 기업가치 평가에는 부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정소람/오현아/김채연/고재연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