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엄마표 매실차'도 막지 못한 중압감…이시형의 도전기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고비 겪었던 이시형, 후원자들 도움으로 올림픽 출전
사람들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을 꿈의 무대, 환희의 무대라고 칭한다.평생 흘린 땀방울의 결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명 선수가 올림픽을 통해 영웅이 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러나 올림픽은 좌절의 무대, 상처의 무대가 될 때도 있다.노력과 인내, 극복의 과정이 단 몇 초 만에 물거품이 되는 곳이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한편으로는 잔인한 무대이기도 하다.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 출전한 이시형(22·고려대)은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김연아의 모습에 반해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다.'초등학생 이시형'은 피겨스케이팅이 레슨비와 대관비, 의상비, 부츠 구매비 등 엄청난 돈이 드는 스포츠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시형은 순수하게 피겨를 사랑했다.

그는 쉬는 시간마다 교실 복도에서 스핀 동작을 쉼 없이 따라 했는데, 이를 이상하게 느낀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학교에 불러 면담했을 정도였다.피겨를 너무나 좋아했던 이시형 군은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온 뒤에야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김밥을 말면서 이시형을 지원했지만,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어렵게 잡은 국제대회 출전권은 그림의 떡이었다.

국가대표에 뽑힌 한 두 명의 초특급 선수가 아니라면, 국제대회 출전권을 획득해도 항공료, 체재비 등 대회 출전 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는 갑상샘암 발병으로 투병 생활을 했다.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17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이시형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지 않고, 개인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돕지 않았다면 그는 은반에서 떠났을 것이다.
이때부터였다.

이시형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가슴 속에 가족사진을 품고 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하게 된 '꿈의 무대' 베이징으로 떠날 때도 그랬다.

이시형은 "일부러 꺼내 보는 건 아니지만, 가족사진을 안주머니에 품고 있으면 가족들과 함께 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시형이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매실차를 챙겨줬다.

떨지 말고 즐기고 돌아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시형은 지난 8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2조 첫 번째이자 전체 7번째로 연기에 나섰다.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챙겨준 매실차를 마시고 나왔는데도 긴장감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시형은 엄청난 떨림 속에 꿈의 무대에 섰다.

그는 TV 앞에 모인 가족과 후원자들을 위해 완벽한 연기를 보이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현실은 드라마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했던 탓이었을까.

이시형은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하고 말았다.

마지막 점프이자 배점이 가장 큰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시도하다 도약 부분에서 크게 흔들리면서 뒤로 넘어졌다.

올림픽 무대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큰 실수였다.

이시형은 29명의 출전 선수 중 27위에 그쳤다.

24명까지 출전하는 프리스케이팅 진출에 실패했다.

이시형의 역경 극복 스토리는 그대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시형에게 올림픽은 어떤 무대였을까.

또 '올림피언' 이시형은 앞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될까.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이시형은 고개를 떨구면서도 "가족과 후원자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그는 13일 한국 남자 피겨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톱5'의 성적을 거둔 차준환(고려대)과 같은 항공편으로 귀국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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