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험금 받으려면 지정병원 이용"…현대해상 제멋대로 규정

현대해상, 지정 의료기관 의료자문 강제 '논란'

'발달 장애' 아동 보험금 지급 심사 강화 과정서
제3 의료기관 자문 거부…지정 의원 진단 강요

정신과 자문 제한으로…'정신질환' 유도 의혹도
현대해상 "일부 직원들의 잘못…즉각 시정조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대해상이 보험금 지급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자사 지정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자문을 강제해온 사례가 확인됐다. 보험 약관상으론 보험수익자와 회사가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함께 제3자(종합병원 소속 전문의)의 의견을 따를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대해상 측은 자사가 자체적으로 정한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자문을 강요하고,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경우 보험금 지급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14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현대해상이 언어 발달 지연 아동에 대해 자사 지정 의료기관 의료자문을 강제해 온 사례가 다수 파악됐다. 문제시된 상품은 '무배당굿앤굿어린이CI보험(Hi1611)'이다. 보험 표준약관에 따르면 '보험수익자와 회사가 보험금 지급사유에 대해 합의하지 못할 때는 보험수익자와 회사가 함께 제3자를 정하고 그 제3자의 의견에 따를 수 있다. 제3자는 의료법 제3조에 규정된 종합병원 소속 전문의 중 정하며, 보험금 지급사유 판정에 드는 비용은 회사가 전액 부담한다'고 규정돼 있다.그러나 현대해상은 위 약관을 위반해 가입자에게 자사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의 의료자문을 강제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보험금 지급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가입자들이 약관상 정하고 있는 제3 의료기관에서 의료자문을 받겠다고 제안한 것도 거부했다. 심지어 가입자 유책사유로 보험금 지급 심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거짓 내용증명까지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해상이 가입자들에 보낸 '보험금 청구건에 대한 안내' 내용증명에 따르면 무배당실손의료(갱신형)보장 특별약관 제9조(보험금 지급절차) 7항과 '질병 치료 적정성 검토를 위하여 현장심사 및 의료자문 진행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사에서 진행하는 심사 과정에 대한 동의가 최종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구가 적시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험사가 가입자의 제3 의료기관 합의 불가 원칙을 고수하면서 현장심사를 배제한 서류 제출만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해상이 가입자에게 자사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의 의료자문을 강제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보험금 지급이 불가하다고 통보한 내용증명. 가입자 유책사유로 보험금 지급 심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거짓 내용이 기재돼 있다. 사진=제보자 제공
언어 발달 지연 아동을 키우고 있다는 A씨는 "무조건 의료자문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 아니다. 보험사와 함께 제3 의료기관을 정해서 아이의 진단을 보다 명확히 받고 이에 따른 결정에 따르겠다는 기본적인 주장인데도 계속해서 거절당하고 있다"며 "이럴 때 치료비를 보상받고자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계속 납부해온 보험금인데, 막상 받으려고 하니 보험사가 정한 곳에서만 아이의 진단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건 명백한 약관 위반"이라고 토로했다. 가입자들은 현대해상이 정신건강의학과에서만 의료자문을 진행토록 제한한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현대해상은 현재 발달 지연 아동이 주로 진료와 치료를 받는 재활의학과에서의 의료자문을 거부하고 있다. 실손보험에서는 치매를 제외한 정신질환(F코드)은 보상하지 않는다. 자폐 스펙트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신 장애는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보험사는 아동의 상태가 발달 지연이 아닌 정신 장애로 판단되는 경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다. 가입자들이 보험사가 이미 '정신질환(F코드)'이라는 진단명을 정해두고 아이에 대한 의료자문을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또 다른 언어 발달 지연 아동의 부모 B씨는 "아이의 아이큐만 보면 또래보다 높은 편이며, 정확한 발음을 구현하는 데에만 어려움이 있어 치료를 받는 것이란 대학병원 진단서가 있다"며 "그런데도 꼭 보험사가 원하는 병원, 그것도 대다수 사례에 F코드를 주는 정신과에서만 진단을 받으라고 한다. 이게 무조건 아이에게 정신질환 판정을 내려 보험금을 안 주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현대해상이 언어 발달 지연 아동에 대해 자사 지정 의료기관 의료자문을 강제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보험금 지급이 불가하다고 통보한 데 따른 가입자 카카오톡 대화 내용. 사진=제보자 제공
현대해상의 자사 지정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자문 강제 행위는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 언어 발달 지연 아동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 강화로 대대적인 의료자문을 필요로 하면서다. 장애등록이 확인되거나 만 5세 이상 해당하는 경우 발달지연(R코드) 적정성 심사 후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발달장애가 심각한 경우엔 만 5세 미만이라도 정밀검사 결과지 확인 후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최근 F코드 진단을 받았음에도 다른 병원으로 옮겨 R코드를 진단받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지급 적정성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게 되었다는 게 현대해상 측 설명이다.그러나 언어 발달 지연 아동의 과잉 진료 근절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심사 정도와 강제성이 과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DB손해보험도 지난 1월부터 언어 발달 지연 아동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해 가입자에 의료자문을 요청하고 있다. 관련 보험금 지급 일자가 1년을 초과한 경우와 만 7세 이상 피보험자가 그 대상이다. DB손보 측은 현재 모든 피보험자에 의료자문 동의서를 요청할 때 '보험회사 지정 의료기관이 있으나 제3 의료기관을 원할 경우 함께 협의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아울러 현대해상과 달리 의료자문 가능 범위를 정신건강의학과로 제한하지 않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약관에 적시돼 있듯 의료자문 동의서에 피보험자의 서명을 받을 때 제3 의료기관에서 자문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안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엔 보험사가 원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자문을 강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최근엔 그러한 일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현대해상의 경우 어린이 보험 시장 점유율이 워낙 높다. 이 때문에 관련 손해율을 줄이고자 보다 강하게 가입자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해상은 일단 자사 지정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자문을 강제하는 내용의 공식 지침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의료자문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의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한 상태다. 즉각적인 시정조치와 더불어 대대적인 직원 교육 및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를 이루겠다는 게 현대해상 측 설명이다.현대해상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자사 지정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자문을 강제토록 하는 지침은 내려진 바 없다. 고의성과 의도성은 전혀 없었다"며 "일부 직원의 잘못으로 확인된 만큼, 즉각적인 시정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 대대적인 직원 교육과 가입자 의견을 반영한 심사 기준 완화 등의 조치도 논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현대해상의 자사 지정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자문 강제 행위의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해 제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관련 민원은 금감원 분쟁조정3국에 배정된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대해상이 제3 의료기관을 배제한 의료자문을 강요했다는 민원이 최근 잇따라 확인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분쟁 조정 결과 보험업법 또는 자본시장법 위반 사항에 해당하거나 표준내부통제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사례로 판명될 경우 회사에 대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보험사가 제3 의료기관에서의 의료자문을 거절하고 일방적으로 관계 기관에서의 자문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태"라며 "이는 예전부터 문제 제기가 이뤄진 '유령 자문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비자 및 가입자를 무시하는 행위다. 다수의 소비자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보험사 내부 체계 개선은 물론 금감원의 강도 높은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