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 감정 존중하라"면서…中, 끝내 '한복'이란 표현 안 썼다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입력
수정
“우리는 최근 한국의 여론이 중국 조선족 대표가 민족 의상을 입고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일에 대해 주목하고 있고 이로 인해 일부 언론에서 중국이 ‘문화공정’과 ‘문화약탈’을 하고 있다며 억측과 비난을 내놓고 있는 데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 특히 조선족들은 이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주한 중국대사관이 돌연 입장문을 발표합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한 여성이 다른 50여개 소수민족 대표와 함께 한복을 입고 오성홍기를 든데 대해 한국 언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나온 입장입니다.중국대사관은 “중국 조선족과 한반도 남북 양측은 같은 혈통을 가졌으며 복식을 포함한 공통의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이러한 전통 문화는 한반도의 것이며 또한 중국 조선족의 것으로, 이른바 ‘문화공정’, ‘문화약탈’이라는 말은 전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어 “한국 측도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각 민족 인민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는 고압적인 태도의 발언도 내놓습니다.
주한 재외공관이 한국 정부, 언론, 국민들을 향해 ‘우려’ ‘불만’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 입장문을 이틀 연속 발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하지만 우리 외교 당국은 끝까지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외교부는 10일 중국대사관의 입장문과 관련해 “외국 공관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주재국의 상황과 정서를 존중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짧은 반응만 발표합니다.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반중정서를 부추겼다”는 내정간섭성 발언에까지 입을 굳게 다문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대사관의 이같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앞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해 7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당시 경선 후보)의 한 언론 인터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까지 쓰며 반박하는 글을 같은 언론사에 기고했습니다. 윤 후보는 당시 인터뷰에서 “공고한 한·미 동맹의 기본 위에서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렇게 다져진 국제적 공조와 협력의 틀 속에서 대중국 외교를 펼쳐야 수평적 대중(對中) 관계가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싱 대사가 이에 대해 “한·미 동맹이 중국의 이익을 해쳐선 안 된다”며 “중·한 관계는 결코 한·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고 반박한 것입니다.싱 대사는 기고문 게재일로부터 불과 나흘 뒤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를 만나 “중국 정부의 대표로서 중국 국가 이익과 양국 관계 수호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까지 냅니다. 외교부가 이미 외교 채널을 통해 “주재국 대사로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경고까지 낸 다음이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지만 이같은 고압적인 반응이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그것도 연속적으로 나온 건 외교 당국 입장에선 뼈 아픈 일입니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해 영국 일본 호주 등 14개국이 참여한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보이콧에 불참한 정도가 아니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필두로 한 정부 대표단과 국가 의전서열 2위의 박병석 국회의장까지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고 개막식을 지켜보던 정부 대표 면전에서 한복은 소수민족의 의상으로 표현됐고, 박 의장은 황제를 상징하는 용 형상의 수로(水路)가 그려진 대형 식탁에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다른 정상들과 나란히 앉아 건너편 멀찍이 떨어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내외와 만찬을 했습니다.
중국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이웃국가 국민의 눈에 ‘문화공정’으로 비춰질 만한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한복은 ‘한푸’, 김치는 ‘파오차이’, 윤동주는 ‘조선족’이라는 주장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한복 사태로 한국 여론이 들끓자 중국은 불난데 기름을 붓듯이 보란듯 “중국 각 민족 인민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는 훈계조의 입장문까지 발표했습니다. 유독 중국 앞에서 ‘소국’을 자처하던 외교의 결과 중국도 우리를 ‘소국’으로 대하게 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지난 8일 오후 주한 중국대사관이 돌연 입장문을 발표합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한 여성이 다른 50여개 소수민족 대표와 함께 한복을 입고 오성홍기를 든데 대해 한국 언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나온 입장입니다.중국대사관은 “중국 조선족과 한반도 남북 양측은 같은 혈통을 가졌으며 복식을 포함한 공통의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이러한 전통 문화는 한반도의 것이며 또한 중국 조선족의 것으로, 이른바 ‘문화공정’, ‘문화약탈’이라는 말은 전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어 “한국 측도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각 민족 인민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는 고압적인 태도의 발언도 내놓습니다.
"조선족 의상은 한반도의 것이자 조선족의 것"
중국대사관이 발표한 961자의 긴 입장문에는 ‘한복’이란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한복을 표현하는 단어는 ‘조선족 의상’, ‘조선족 대표의 민속 의상’ 뿐이었습니다. 중국대사관이 ‘한복은 한국의 것’이라 했다는 일부 언론 기사들의 제목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어긋나는 ‘반만 맞는 제목’인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 문화는 한반도의 것이며 또한 중국 조선족의 것”이라고 말한 중국대사관의 표현에 비춰보면 ‘네 것일 수도 있고 내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 더욱 적절할 것입니다.“한국 언론의 억측과 비난에 중국 네티즌들이 매우 불만스러워하고 있다”는 중국의 상당히 고압적인 입장문은 공교로운 시점에 발표됐습니다. 중국 측이 외교 경로를 통해 “한복이 한국과 한민족 고유의 문화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라고 전달했다”고 알려졌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한국 언론을 탄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중국대사관은 자국을 대표하는 공식 입장문에서 ‘한복’ 대신 ‘조선족 전통의상’, ‘한국’ 대신 ‘한반도’, ‘한민족’ 대신 ‘중국 조선족과 한반도 남북 양측은 같은 혈통’이라는 표현으로 돌려 썼습니다. 외교경로에서도 분명 이같이 말했을텐데 한국 외교 당국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죠.중국대사관은 다음날 이같은 입장문을 친절히 한글로 번역해서 다시 게재합니다. 그리고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쇼트트랙 편파판정에 대한 입장문까지 발표합니다. 중국대사관은 “우리는 최근 한국의 올림픽 선수단과 일부 언론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 대해 ‘편파 판정’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은 중국 정부와 베이징 올림픽 전체에 화살을 돌리고 심지어 반중 정서를 부추기며 양국 국민의 감정을 악화시켰고 중국 네티즌들의 반격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합니다. 이어 “이에 대해 엄중한 우려와 엄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주한 재외공관이 한국 정부, 언론, 국민들을 향해 ‘우려’ ‘불만’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 입장문을 이틀 연속 발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하지만 우리 외교 당국은 끝까지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외교부는 10일 중국대사관의 입장문과 관련해 “외국 공관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주재국의 상황과 정서를 존중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짧은 반응만 발표합니다.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반중정서를 부추겼다”는 내정간섭성 발언에까지 입을 굳게 다문 것입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中의 고압적 태도
한 국가의 대사관이 주재국 국민이나 정치권을 향해 공개적인 입장을 표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양국 국민 정서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민감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고 겉으로는 되도록 웃는 모습만 연출하는 게 외교가의 암묵적인 규칙이기도 합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지난 8일 크리스 델 코소 대사대리가 한복 인플루언서인 유미나씨와 한복을 입고 운현궁을 방문한 사진을 ‘#OriginalHanbokFromKorea’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린 게 대표적입니다.하지만 중국대사관의 이같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앞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해 7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당시 경선 후보)의 한 언론 인터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까지 쓰며 반박하는 글을 같은 언론사에 기고했습니다. 윤 후보는 당시 인터뷰에서 “공고한 한·미 동맹의 기본 위에서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렇게 다져진 국제적 공조와 협력의 틀 속에서 대중국 외교를 펼쳐야 수평적 대중(對中) 관계가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싱 대사가 이에 대해 “한·미 동맹이 중국의 이익을 해쳐선 안 된다”며 “중·한 관계는 결코 한·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고 반박한 것입니다.싱 대사는 기고문 게재일로부터 불과 나흘 뒤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를 만나 “중국 정부의 대표로서 중국 국가 이익과 양국 관계 수호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까지 냅니다. 외교부가 이미 외교 채널을 통해 “주재국 대사로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경고까지 낸 다음이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지만 이같은 고압적인 반응이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그것도 연속적으로 나온 건 외교 당국 입장에선 뼈 아픈 일입니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해 영국 일본 호주 등 14개국이 참여한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보이콧에 불참한 정도가 아니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필두로 한 정부 대표단과 국가 의전서열 2위의 박병석 국회의장까지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고 개막식을 지켜보던 정부 대표 면전에서 한복은 소수민족의 의상으로 표현됐고, 박 의장은 황제를 상징하는 용 형상의 수로(水路)가 그려진 대형 식탁에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다른 정상들과 나란히 앉아 건너편 멀찍이 떨어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내외와 만찬을 했습니다.
중국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이웃국가 국민의 눈에 ‘문화공정’으로 비춰질 만한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한복은 ‘한푸’, 김치는 ‘파오차이’, 윤동주는 ‘조선족’이라는 주장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한복 사태로 한국 여론이 들끓자 중국은 불난데 기름을 붓듯이 보란듯 “중국 각 민족 인민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는 훈계조의 입장문까지 발표했습니다. 유독 중국 앞에서 ‘소국’을 자처하던 외교의 결과 중국도 우리를 ‘소국’으로 대하게 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