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값 500원 아끼려다 100만원 넘게 날려"…피해자 '분통' [최예린의 사기꾼 피하기]

“너무 할인을 많이 해주니까 처음엔 의심스러워서 10만원권만 사서 바로 바로 썼죠. 그런데 대형마트, 편의점이랑도 제휴를 맺었다고 하니까 믿음이 가는 거에요. 내가 모르는 어떤 수익 구조가 있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때부턴 20만원권을 사서 쟁여놓고 썼죠.”

생활비 아끼려 썼는데...133만원 날려

지난 8일 ‘머지플러스’ 대표에 대한 첫 공판이 진행된 서울 남부지법에서 ‘머지포인트’ 피해자 김모씨(43)를 만났습니다. 김씨는 2018년 처음 머지포인트를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식당, 카페 등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바우처를 15~20% 할인해 판매한다니, 혹했지만 동시에 의심스러웠습니다. 이렇게 할인을 해주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 사업 모델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머지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제휴업체가 대형마트, 편의점 등 200여개로 늘어나자 김씨의 의심은 옅어졌습니다. 작년 2월 할인율이 높아지자 김씨는 100만원 가량의 머지포인트를 구매해 쌓아놓고 썼습니다.

그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머지포인트를 이용했습니다. 자주 가는 ‘빽다방’의 2500원짜리 카페라떼는 머지포인트를 이용하면 2000원 정도에 마실 수 있었습니다. 마트, 편의점에서 생필품과 식자재도 샀습니다.

‘머지런’ 사태가 발생한 건 지난해 8월 11일. 운영사 머지플러스가 포인트를 쓸 수 있는 가맹점을 일부 음식점으로 제한하면서, 주요 편의점 및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머지포인트를 사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포인트 판매도 중단되면서 ‘돈을 돌려받기 힘들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이용자들은 포인트 환불을 요구하기 위해 회사로 몰려들었습니다. 김씨도 머지포인트를 구매하는데 쓴 133만7000원어치를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사기·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

결국 머지플러스는 포인트 매수자들에게는 750억원, 제휴사에는 259억원 등 총 1009억원을 돌려주지 못했습니다. 권남희 머지플러스 대표(38)와 권보군 최고전략책임자(CSO·35)는 사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돼 지난 8일 첫 공판이 이뤄졌습니다.

머지플러스 대표 남매는 첫 공판에서 사실상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이들은 머지플러스의 수익모델을 카카오나 아마존과 같은 대형 플랫폼 기업에 비유하며 사기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20% 할인으로 발생한 적자는 사업체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계획된 적자였다”며 “(머지플러스는) 전자금융업으로 등록할 의무가 없는 사업체였기 때문에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존·카카오처럼 계획된 적자”

이들의 첫 번째 혐의는 사기입니다. 검찰은 고액 적자가 누적돼 정상적인 사업운영이 어려워졌음에도 이를 고지하지 않고 피해자 57만명에게 2521억원의 머지머니를 판매해 수익을 편취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머지머니를 20% 할인해 판매하는 사업 구조로는 수익을 낼 수 없고, ‘돌려막기’ 식으로 결제대금을 지급했다는 것이죠.

이날 공판에서 재판부 역시 20% 할인된 가격으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판매하는 사업 구조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성보기 부장판사는 “무슨 재주로 20%의 적자를 메우고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궁금하다”며 “돌려막기 말고 어떤 수익모델이 있었는지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피고인 측은 20% 할인 판매가 계획된 적자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존이나 카카오처럼 시장 지배력이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다는 뜻인데요. 변호인은 “플랫폼 기업은 처음에 많은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상당 기간 계획된 적자를 유도한다”며 “3년 넘게 이상없이 운영했지만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 제재로 머지머니 판매를 중단하며 사업이 꼬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자금융업으로 등록할 의무 없어”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검찰은 머지머니를 발행, 관리한 머지플러스를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 사업체로 판단했습니다. 2개 업종 이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상품권을 발행하는 경우 금융위원회에 전자금융업자(전금업자)로 등록해야 하는데, 머지플러스는 등록 없이 영업했다는 겁니다.

권씨 남매 측은 이러한 혐의의 전제를 부인했습니다. 머지머니가 실질 지급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자금융업으로 등록할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변호인은 “소비자들이 머지머니를 사용해 가게에서 직접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머지머니를 기프티콘 업체(콘사)의 기프티콘으로 바꿔 결제하는 구조”라고 했습니다. 콘사는 온라인 상품 거래 수단인 기프티콘을 발행, 운영하는 회사를 의미하는 약어입니다.

이들의 2차 공판은 다음달 3일 오전 11시30분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누가 명품 사려고 머지포인트 샀겠냐”

한편 머지플러스는 지난해 말부터 음식점 등 오프라인 결제 지원을 모두 멈추고, 일종의 온라인 쇼핑몰인 ‘머지 유니버스’를 마련했습니다. 환불받지 못한 머지포인트를 ‘머지코인’으로 전환하면 이 쇼핑몰에서 상품을 결제하는데 쓸 수 있습니다. 다만, 머지코인으로 환전환 후에는 취소와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기존 머지포인트의 환불 신청도 더 이상 받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기준 머지 유니버스 입점 브랜드는 쌤소나이트, 테팔, 코렐 등 42개입니다. 하지만 매치메이커스라는 업체 1개가 판매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해당 브랜드들과 정식 제휴를 맺지 않고, 물건을 떼와서 파는 유통업을 하고 있다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 쇼핑몰이 오히려 이용자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우선 상품들이 시중가보다 비쌉니다. 이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쌤소나이트 서류가방은 20만3400원이지만, 네이버 등에서는 15만~18만원 선에서 판매됩니다.
머지유니버스에 입점한 업체 중 하나는 발망, 프라다, 버버리 등의 명품 의류를 판매하는 업체입니다. 피해자들은 온라인 카페에서 “편의점에서 생활비 아끼려고 머지를 구매했지, 누가 명품 사려고 머지를 구매했냐”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상품을 사려면 기존에 보유한 머지코인 외에 추가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 쇼핑몰에서 5만원짜리 물건을 산다면, 1만원은 머지코인으로 결제하고 나머지 4만원은 소비자가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해야 합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