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10년간은 독자 나 혼자뿐…얼마나 겁 없이 썼나 생각도"

40여 년 쓴 전집 새 출판사서 출간…"'영웅시대'는 1년간 보완할 것"
대표적 보수 작가…"사회 틀 이상하게 바꾸는 편향된 개혁 신뢰 못 얻어"
"마지막 결정판이란 생각에 꼼꼼히 보다 보니 시간이 꽤 걸리네요. "
소설가 이문열(74)은 그동안 세상에 내놓은 작품을 지난 두 해에 걸쳐 찬찬히 들여다봤다.

40여 년을 함께한 출판사 민음사를 떠나 2019년 알에이치코리아(RHK)에 새 둥지를 틀고 작품 전집 출간 작업을 하면서다.

개정판 교정 막바지인 이문열은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마지막 남은 '호모 엑세쿠탄스'와 '불멸'을 이달 중 끝낼 생각이다. 안중근 의사 일대기인 '불멸'은 제목을 바꾸고 싶어 고민 중"이라고 했다.

문단의 노장은 "전체 저서로 치면 70여 권 되고 그중 제 이름을 단 창작물은 60여 권가량 된다"며 "이제 75세가 돼 생산보다는 이렇게 엮어서 돌아본다"며 걸쭉한 웃음을 지었다.

알에이치코리아는 2020년 초부터 이 작가의 책 65권 재출간을 시작해 오는 6월 완간할 계획이다. 그중 '사람의 아들'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미 각각 3쇄까지 찍었다.

오디오북 서비스 윌라에서도 처음 출간한 '삼국지' 1권이 1월 베스트 순위 1위에 올랐다.
이 작가는 이번 작업 과정에서 여전히 문학적 성취를 느낀 작품이 있는지 묻자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고 했다. 그는 "문학적 완성도가 있을 때, 혹은 객관적인 완성도와 관계없이 주제나 소재가 내 삶과 닿아있어 아프게 되살아날 때 '잘 썼구나' 싶다.

어떤 작품은 많은 부분이 상상력에 맡겨졌는데, 그게 잘 어우러져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낼 때 '괜찮다'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1979년 등단한 이문열은 삶에 투영된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궤적을 글로 꿰어냈다.

등단 첫해 '사람의 아들'을 시작으로 '젊은 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구로 아리랑',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변경'을 비롯해 1980~1990년대 수많은 화제작과 베스트셀러를 냈다.

평역 소설 '삼국지'와 '수호지', '초한지'는 젊은 층에도 널리 읽혔다.

세월이 흐르고 돌아볼 때 아쉬운 작품으로는 초기작 '영웅시대'를 꼽았다.

이 소설은 월북한 좌파 지식인의 파란만장한 삶과 남한에 남은 가족의 수난을 통해 이념과 인간의 문제를 다뤘다.

작가도 월북한 아버지, 고통받은 가족사가 있어 애착이 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영웅시대'에 대해 "당시 정보와 체험 부족으로 엉성한 우화같이 돼 버렸다"고 고백했다.

1년가량은 보완하며 정비할 필요가 있어 이번 재출간에서도 미뤄놨다고 한다.

"북한이나 마르크시즘에 대한 정보가 엄격하게 차단돼 있던 때였죠. 가족사적인 추억은 있지만 주인공(이동영)을 지배한 이념적인 측면은 많은 부분 잘 모르는 얘기를 해야 했죠. 직접 삶으로도 겪을 수 없는 부분이었고요.

주인공의 이념과 감정 변화 등 리얼리티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어요.

"
그는 "사소하게는 주인공이 북한에 가 원산에서 평양까지 기차를 타고 하룻저녁에 왔다 갔다 하는데 엉터리"라며 "그때는 철로가 폭격을 맞아 기차 여행은 꿈도 못 꿀 때"라며 웃었다.
그의 여러 작품에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돼 있다.

"젊은 날을 톡 잘라보면 '젊은 날의 초상'에도 (내가) 있고, '변경'에도 3분의 1가량 투영됐어요.

학문적 경험에서 보면 '사람의 아들'에도 젊은 날에 열심히 들여다본 것들의 일면이 잘 드러났죠. 문학 작품은 머릿속에서만 나올 수 없고 어떤 형태로든 삶 자체와 맺어져 있어요.

"
20대부터 50년간 글을 쓴 그는 "예전엔 글을 짓는다는 게 '내가 좋아서 한다'는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문학이란 게 작가의 주관적인 것과 깊은 관계가 있죠. 남이 혹은 독자가 좋아할 거라고 어떤 건 쓰고, 싫어한다고 안 쓰는 건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생각대로 쓴다는 신념이 있었는데 세상과 부딪혀보니 받아들이는 이들에겐 다른 차원의 절실함도 있더군요.

"
작품 중 전통적인 여인상이 등장한 '선택'과 장애 여성이 주인공인 '아가-노래 중의 노래'는 페미니즘 논쟁의 대상이 됐다.

이 작가는 문단의 거인으로 찬사를 받은 동시에 소설 속 역사적 시각과 이념 등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이를 두고 그는 "예전엔 불만도 있고 아쉽기도 했다"며 "그런데 문학이 내 것만은 아니었다.

(등단 나이 31세지만) 글을 쓴 게, 스무 살 때부터였으니 무명 시절 10년은 독자가 나뿐이었다.

그때 우선으로 생각한 건 나였다.

나중에 독자와 상대하다 보니 '내가 얼마나 겁 없이 썼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회고했다.

대표적인 보수 진영 작가인 그는 그간 문학 작품 밖의 정치, 사회적인 견해도 밝혀왔다.

그는 내달로 다가온 대선과 관련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며 "대학 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부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까지 일련의 행보를 보면 신념과 지향의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또 감염병 장기화, 세대와 성별 등 사회 곳곳의 갈등이 심화한 상황에서 다음 지도자가 국정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기를 바라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우린 여러 형태의 지도자를 봤죠. 경험에 비춰볼 때 급진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변혁은 신뢰를 얻지 못해요.

나쁜 점을 고치고 개선하는 건 좋지만, 사회 틀이나 구조를 이상하게 바꾸는 식 말이죠. 지금은 통합이 필요한 시기이니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제도나 사고가 기계화되고 한 방향으로 편향돼서도 안 돼요.

이건 전부 악이고, 이건 전부 선이란 형태의 개혁은 우려스럽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