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선심성 공약 경쟁 '급급'…건보 지속가능성 논의는 실종
입력
수정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급변에 건보재정 장기 전망 '빨간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비록 단편적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은 앞다퉈 선심성 건강보장 공약을 내놓고 있다.
탈모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가격부담을 줄여주고, 요양병원 간병비, 정신건강 검진도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방안들은 국민 부담을 덜어주고, 건강보장을 확대해주는 만큼 당장은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하지만 이런 보장강화 공약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방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인구구조 급변으로 건보 장기 재정전망 어두워
건강보험은 현재 곳간에 20조원이 넘는 누적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는 등 아직은 재정이 넉넉한 편이다.
현금수지 흐름도 괜찮다.보험료 등으로 들어온 수입이 요양급여비 등으로 나간 지출보다 많아서 적어도 지금까지는 보험재정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단기적 현상일 뿐 장기적으로 앞날이 절대 밝지 않다.
총인구 감소 시기가 빨라지고 초고령사회가 한 발짝 더 일찍 도래하는 등 인구구조 급변으로 건강보험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통계청의 '2020년 출생·사망통계(잠정)'를 보면 2020년 우리나라 인구는 3만3천명 자연 감소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인 0.84명으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은 2018년(0.98명), 2019년(0.92명)에 이어 3년 연속으로 1명 미만을 기록했다.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아이를 1명도 낳지 않는다는 의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반면 노인 인구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20년부터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로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는 향후 10년간 연평균 48만명씩 증가할 전망이다.
통계청의 2017∼2067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19년 769만명인 노인 인구는 2020년 813만명, 2022년 898만명, 2024년 995만명으로 빠르게 늘어 2025년에는 1천51만명으로 '노인 인구 1천만 시대'에 접어든다.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17년이 소요됐으나,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는 불과 7년밖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다.
OECD 37개국 중 지난해 초고령사회인 국가는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11개국이다.
이 중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걸린 기간이 한국보다 짧은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이렇게 저출산·고령화 기조가 가속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을 고려하면 '인구 절벽'은 더욱더 가팔라질 게 확실하다.
여기에다 경제마저 저성장으로 접어들었고,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신의료기술 발달 등으로 대형병원의 문턱이 낮아지고 의료이용이 늘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건강보장 수준과 국민의 보험료 부담 정도,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양급여 보상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건보 지속 가능성 제고 위한 '국가적 플랜' 필요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보험이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재정 수술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저출산으로 돈 낼 사람은 급격히 줄고, 고령화로 건강보험 보장 혜택을 받을 사람은 크게 늘면서 보험재정 구조에 구멍이 뚫리는 상황에 대비해 건강보험의 중장기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국가적 플랜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민간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서비스 공급체계 아래서 과잉 진료와 의료 과다 이용, 비정상적인 진료비 청구 등의 낭비적 요소를 없애고 급증하는 의료비를 국가와 의료공급자가 책임지고 절감하게 하는 방향으로 재정지출 구조를 합리화해야 한다.
근로소득 등 특정 재원에만 편중된 현재의 건강보험 재원 충당 통로를 다변화하는 등 신규재원을 발굴해 재정기반을 튼튼하게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소득 이외에 여타 소득(금융·양도·임대소득 등)도 건강보험료 부과소득 범위에 포함하는 등 부과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보험료 이외에 목적세 등 다른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건강보험에 대한 현재의 불투명한 국고지원 법 규정부터 명확하게 고쳐서 재정기반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정부는 2007년부터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따라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14%는 일반회계(국고)에서, 6%는 담뱃세(담배부담금)로 조성한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해야 하지만, 보험료 예상 수입액을 적게 산정하는 편법으로 지금껏 이런 지원 규정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국고지원 확대뿐 아니라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방식에 이른바 '사후정산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1977년 7월 5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직장 의료보험 시행으로 본격 의료보험 시대를 연 후 점진적으로 대상을 확대해 나가면서 도입 12년만인 1989년 7월에 전 국민 건강보험을 달성했다.
세계 사회보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개척하면서 국민의 건강 수준도 끌어올렸다.
전 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은 지 30년이 넘었다.
저출산·고령화의 암울한 시대에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이런 혜택을 계속 누리려면, 건강보험에서 새는 곳간은 막고 들어오는 돈줄은 대폭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그러려면 정치적으로는 인기 없는 아이템이겠지만, 대선 후보로서 세계 유례없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인구구조 변화 때문에 건보의 장기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고통 분담을 요청해야 한다.
/연합뉴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비록 단편적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은 앞다퉈 선심성 건강보장 공약을 내놓고 있다.
탈모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가격부담을 줄여주고, 요양병원 간병비, 정신건강 검진도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방안들은 국민 부담을 덜어주고, 건강보장을 확대해주는 만큼 당장은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하지만 이런 보장강화 공약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방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인구구조 급변으로 건보 장기 재정전망 어두워
건강보험은 현재 곳간에 20조원이 넘는 누적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는 등 아직은 재정이 넉넉한 편이다.
현금수지 흐름도 괜찮다.보험료 등으로 들어온 수입이 요양급여비 등으로 나간 지출보다 많아서 적어도 지금까지는 보험재정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단기적 현상일 뿐 장기적으로 앞날이 절대 밝지 않다.
총인구 감소 시기가 빨라지고 초고령사회가 한 발짝 더 일찍 도래하는 등 인구구조 급변으로 건강보험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통계청의 '2020년 출생·사망통계(잠정)'를 보면 2020년 우리나라 인구는 3만3천명 자연 감소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인 0.84명으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은 2018년(0.98명), 2019년(0.92명)에 이어 3년 연속으로 1명 미만을 기록했다.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아이를 1명도 낳지 않는다는 의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반면 노인 인구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20년부터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로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는 향후 10년간 연평균 48만명씩 증가할 전망이다.
통계청의 2017∼2067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19년 769만명인 노인 인구는 2020년 813만명, 2022년 898만명, 2024년 995만명으로 빠르게 늘어 2025년에는 1천51만명으로 '노인 인구 1천만 시대'에 접어든다.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17년이 소요됐으나,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는 불과 7년밖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다.
OECD 37개국 중 지난해 초고령사회인 국가는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11개국이다.
이 중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걸린 기간이 한국보다 짧은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이렇게 저출산·고령화 기조가 가속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을 고려하면 '인구 절벽'은 더욱더 가팔라질 게 확실하다.
여기에다 경제마저 저성장으로 접어들었고,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신의료기술 발달 등으로 대형병원의 문턱이 낮아지고 의료이용이 늘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건강보장 수준과 국민의 보험료 부담 정도,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양급여 보상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건보 지속 가능성 제고 위한 '국가적 플랜' 필요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보험이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재정 수술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저출산으로 돈 낼 사람은 급격히 줄고, 고령화로 건강보험 보장 혜택을 받을 사람은 크게 늘면서 보험재정 구조에 구멍이 뚫리는 상황에 대비해 건강보험의 중장기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국가적 플랜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민간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서비스 공급체계 아래서 과잉 진료와 의료 과다 이용, 비정상적인 진료비 청구 등의 낭비적 요소를 없애고 급증하는 의료비를 국가와 의료공급자가 책임지고 절감하게 하는 방향으로 재정지출 구조를 합리화해야 한다.
근로소득 등 특정 재원에만 편중된 현재의 건강보험 재원 충당 통로를 다변화하는 등 신규재원을 발굴해 재정기반을 튼튼하게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소득 이외에 여타 소득(금융·양도·임대소득 등)도 건강보험료 부과소득 범위에 포함하는 등 부과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보험료 이외에 목적세 등 다른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건강보험에 대한 현재의 불투명한 국고지원 법 규정부터 명확하게 고쳐서 재정기반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정부는 2007년부터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따라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14%는 일반회계(국고)에서, 6%는 담뱃세(담배부담금)로 조성한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해야 하지만, 보험료 예상 수입액을 적게 산정하는 편법으로 지금껏 이런 지원 규정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국고지원 확대뿐 아니라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방식에 이른바 '사후정산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1977년 7월 5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직장 의료보험 시행으로 본격 의료보험 시대를 연 후 점진적으로 대상을 확대해 나가면서 도입 12년만인 1989년 7월에 전 국민 건강보험을 달성했다.
세계 사회보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개척하면서 국민의 건강 수준도 끌어올렸다.
전 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은 지 30년이 넘었다.
저출산·고령화의 암울한 시대에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이런 혜택을 계속 누리려면, 건강보험에서 새는 곳간은 막고 들어오는 돈줄은 대폭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그러려면 정치적으로는 인기 없는 아이템이겠지만, 대선 후보로서 세계 유례없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인구구조 변화 때문에 건보의 장기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고통 분담을 요청해야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