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돈의 시대, 투자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PEF썰전]

[한경 CFO insight]

김태엽 어펄마캐피탈 한국대표 taeyub.kim@affirmacapital.com
아…정말 대혼돈의 시대가 왔다. 기나긴 저금리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고, 미국은 소비자 물가지수가 장장 7.5%나 상승했다. 1982년도 이래로 최대 수치이니 장장 30년만의 기록 갱신이다. 더 무서운 것은 물가 상승이 당분간 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들이다. 메타버스를 부르짓던 옛 페이스북(메타플렛폼)은 한 달 만에 주가가 30% 넘게 폭락했다. 자자 FAANG에 물리신 여러분들은 이대로 주저앉아 패배를 인정하고 눈물지을 것인가?

필자의 경우?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연금 펀드의 나스닥 어쩌구 ETF는 오늘도 마이너스 11%를 기록 중이고, 한 술 더 떠 중국 펀드의 수익률은 지하실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맨탈을 챙기냐고? 뭐 간단하다. 필자는 노빠꾸다. 까먹은거는 벌어서 메우면 된다. 그럼 어떻게?'노빠꾸 멘탈'을 등에 없고 오늘도 필자는 오미크론의 예외 없이 저녁 약속을 하고(다행히 오늘은 한번만 했다 - 내일은 두번 저녁 먹기 신공이 예약돼있다), 실성한 사람마냥 수다를 떨고, 이런 저런 명함들을 수북이 받아와서 스캔하느라 침대머리 맡에서 잠은 안자고 깨작거리고 있다. 9시면 헤어져야하는 신데렐라 신세지만, 튼실히 하루에 5~6개의 미팅을 잡고 대략 오늘도 한 스무명 정도는 거뜬히 만난 듯 하다. 코로나가 안 무섭냐고? 비밀인데, 필자는 슈퍼항체 보유자이다(그러니 내가 불쑥 찾아가도 겁먹지 마시라). 뭐, 필자가 슈퍼항체 보유자가 된 썰은 따로 공유토록 하겠다.

그럼 왜 이렇게 싸돌아다니는가? 자,본론으로 들어가보자.

필자가 20여년간 투자를 해오면서 만난 수많은 성공적인 기업가 그리고 투자자들을 보면 딱 두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호기심, 두 번째는 집요함. 재미있는 건 여기에 '똑똑함', '성실함', '금수저'는 없다. 한마디로 "야-너도 할 수 있어"인 것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호기심=성장 에너지, 혹은 공격력

한 10년쯤 전인가, 현금 많기로 소문난 알짜 중견 A그룹의 X회장님과 우연찮게 친분을 쌓은 적이 있었다. 내 또래 아들을 두신 회장님이신지라 처음 몇 번은 어색했지만 한 6개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농담도 주고 받고 와인도 선물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려고 시작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뭐 별거 있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것 저것 기업 인수에 대한 아이디어와 함께 회장님의 그룹 자회사들에 대한 직극히 사적인 의견을 자료로 만들어 (건방지게도)들이밀었다. 평소 인품도 온화하시고 곧잘 어린 나의 호기어린 주장들을 경청해주시던 회장님께서는 그날따라 유난히 말이 없으시고 소파에 푹 파묻혀 다리를 꼬아 앉으셨다. 이것은 레드 사인.

저녁이 끝난 다음날 바로 회장님의 오른팔꿈치 정도 되는 친한 B상무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제 회장님께서 저한테 좀 삐치신 것 같던데요." 상무님 왈 "응, 맞아. 어제는 김 대표가 너무 들이댔어 어떡하냐."

사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의도는 지극히 선했다. 선친께서 일갈을 이루신 기업을 물려받은 엘리트 아들이자 형제 및 사촌들과 조용하지만 치열한 경영권 경쟁에서 살아남으면서도 명예를 잃지 않은 회장님이시지만, 그 그룹의 입지는 지난 30년간 많이 빛이 바래왔다. 수 조원 대의 스타트업 오너들이 탄생하는 동안, A그룹은 온화한 그룹 문화를 바탕으로 힘이 빠져가는 비주력 사업은 매각하거나 적과의 동침을 통해 그룹에서 빼내고 있었고, 전반적인 그룹의 분위기는 리스크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비록 60대에 접어 드셨지만 여전히 종결되지 않은 지분 경쟁, 그리고 인수보다는 정리에 중점을 맞춘 그룹 포트폴리오, 높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이익률, 그리고 낮은 배당률. 그러면 신사업은? 아뿔싸. 수 년 전 집행했던 사업 다각화형 바이아웃 결과들은 민망했다. 신사업들은 대부분 좀비 상태에 접어들어 있었다.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실정. 그 와중에 대대손손 이어오던 주력 기업은 만년 2~3등이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현상 유지. 결국 이를 종합해 보면, 지금 회장님의 마음 속에는 공격보다는 수비가, 그리고 외형 확장보다는 안정적인 3세대 승계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룹 계열사들의 '저평가'가 오히려 싼 값에 물려줄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회장님의 호기심 레벨은 극도로 낮아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미스. 한 발 물러났다. 가슴 아프게도, 흘러내리고 있었던 A그룹의 주가와 함께.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을까. A그룹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X회장님의 아들 Y가 임원으로 취임한 지 1년도 안돼서 작지만 같은 산업군에 있는 회사를 전격적으로 인수한 것이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도대체 누가 했는지 뒤져보았다. 오호라!

그 M&A의 주역은 당시 비서실에 계셨던 재간둥이 B 상무님의 작품이었다. 나와 회장님 사이를 이어주시고, 잊을 만하면 꼭 골프 초대를 해주시고, 독특한 맛집 리스트를 가지고 계셨던 바로 그 상무님. 워낙 호기심이 많던 그 상무님은 집요하게 우리 펀드가 어떻게 회사를 발굴하는지, 어떻게 실사를 하는지, 어떻게 가격 협상을 하는지 물어보시곤 했었다. 나와 회장님과의 어색한 이별은 그 B상무님께 '승계를 위한 M&A'라는 힌트를 주게 되었고, 노동적 근면성으로 나를 비롯한 수많은 PE들 자문사들을 만나고 매물을 찾아 (좀 비싸지만)이해하기 쉽고 안정적인 중소기업을 승계 시점에 맞춰 인수한 것이다. 회장님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족했던 '호기심' 영역을 발랄한 임원 한 명이 힘껏 채워나갔던 것이다.

자 그럼 금수저도, 슈퍼스타 임원도 없는 우리 일반인들에게는 기회가 없는가? 아니다, 많다. 그것도 눈부시게. 여의도 자취방에서 전업투자를 시작으로 수천 억대의 자산을 이룬 Z대표 형님은 그야말로 흙수저의 대표명사 같은 분이셨다. 수 년 전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된 Z대표는 대학생 때 주식 투자를 시작하여 꿈을 키워갔으나, 화려한 증권맨의 명함을 뒤로 하고 수 차례 투자 실패로 인해 깡통 계좌를 3번이나 차고, 말 그대로 마포대교를 2번이나 갔다왔다는 믿기 어려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문턱에서도 그러나 굴하지 않고 넘치는 지적 호기심을 멈추지 않았고, 신성장 산업에 베팅을 하는 투자 전략을 밀어붙인 결과, IT 붐과 바이오 붐을 발판으로 전셋돈 몇천 만 원을 수천 억으로 불려낸 투자의 불사조. 그 성공의 비밀은 뭘까?

Z대표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호기심의 결정체였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테마,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맛집, 새로운 여행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Z대표님의 정보력은 웬만한 최상급 VC나 PE 운용역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투자 규모도 커지고, 의사 결정도 빠른지라 중견 PE들이 투자하는 성장자금 투자에도 종종 LP로 이름을 내밀었고, 필자도 이제 잘 모르는 새로운 섹터가 있거나 신속한 촉을 필요한 딜이 있으면 꼭 찾아가서 상의하는 한 분이 되었다. 다만 Z대표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였는데, 호기심과 투자의사결정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사례를 들어 보자.

수 년 전 공유경제가 한참 뜰 때였나, 필자가 운용하는 펀드에서 다양한 렌탈 기기를 취급하는 D회사의 경영권 인수를 검토할 기회가 있었다. 적당히 촌스럽고, 적당히 비효율이 있었던 D회사를 그럭저럭 괜찮게 본 나는 Z대표에게 쪼르르 가서 의견을 구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섹터를 찍고 보고 있었던 나는 고만고만한 회사들 중에서는 그래도 D회사가 괜찮아보였던 건데, 하루에도 몇 개씩 투자 제안을 받고 있던 Z대표에게는 들어가는 공수 대비 큰 돈 안되는 계륵이었던 것이었다. 꼬치꼬치 캐묻던 Z대표는 D회사의 핵심임원들이 산업성장기에 회사를 떠나려는 점, 제일 수익이 많이 나고 있는 제품군에 있어서 대항하는 다크호스 경쟁사가 생겨난 점, 매출의 대부분이 특정 채널에 의존하는데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채널이 탄생하고 있는 점을 얄밉게 꼬집어내었다.

그러나 진정한 Z대표의 무서움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지 1년쯤 되었나, 그 다크호스 경쟁사가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이미 D회사의 투자를 드랍한 상태였지만 궁금한 나는 누가 그 딜을 했는지 찾아보았다. 우와…. 신생 PE가 Z대표를 포함한 몇몇 큰 손들을 모아서 투자를 이끌어낸 것이다. 역시 꺼진 불도 다시 볼 줄 아는 공격력, 그것이 진정한 호기심인 것이다.

이런 Z대표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호기심에 따라 들어가야 할 '세트 메뉴'가 보인다. 다들 눈치 채셨나? 다름 아닌 강한 멘탈과 집요함.


집요함=실행 에너지이자 방어력

필자가 수 년 전 투자한 T회사는 나이 지긋하신 W창업주와 그 가족 지인 분들이 주주로 구성된 회사였다. 유통업에 몸을 바친 W회장님은 타고난 친화력과 영업력을 기반으로 자수성가를 하셨고, 무척이나 공격적인 영업 마인드는 회사에게 약이자 독이 되어있었다. 성장을 명제로 삼은 나머지 꼼꼼한 운전자본 관리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고, 과거의 성공은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둔감하게 되는 리스크로 변질돼 있었다. 60이 넘는 나이에도 왕성한 호기심으로 신규 사업에 손을 대던 W회장님은 결국 매출과 이익은 크는데 현금은 말라버리는 이른바 '흑자도산'의 위험을 달고 사셨다.

수 개월간 고심고심 끝에 투자를 하게 된 나는, 정말 첫 1년간 매주 경영회의의 첫 30분을 부도 위기 극복이라는 주제에만 할애하는 지옥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회장님의 왕성한 호기심은 아쉽게도 실행력을 갖추지 못했고, 무수한 아이디어 속에 한 주 한 주 현금흐름을 맞춰가야하는 통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서 채권 회수 현황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닌가? 초반 수비수 위주의 경영진을 구축한 우리는 회장님의 눈꽃처럼 무수한 아이디어들을 잽싸게 검증하고, 기존에 벌려놓기만 하고 단도리치지 못한 신사업들을 하나하나 바로잡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시작한 오프라인 사업부는 브랜딩과 로고 디자인부터 새로 하고, 일별 평당 매출 비교, 주별 인당 생산성 평가, 유통기한별 다이나믹 프라이싱 등과 같은 뻔하지만 꼭 해야되는 관리 체계를 도입했다. 적자 매장들을 접느라 손실은 지속 되었고, 직원 교육에 해고에 채용을 같이 해야하는 그야말로 '헬사업'이 1년간 지속되었다. 그럼 온라인은 잘 되냐고?

매출은 크는데 채권은 회수가 안 되기는 온라인 사업부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지분구조도 너무 복잡해서 이걸 정리하고, 기존 경영진을 교체하고, 분식회계를 발견하고, 불용 재고를 떨고, 하다 못해 온라인 사업부의 디자인팀 한 명 한 명을 개인면담하기까지, 우리의 첫 1년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마음 한 구석에 살짝 후회의 싹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 노빠꾸 아닌가! 이렇게 첫 2년 반을 매달 부도 위기 극복 TFT를 돌릴 정도로 급박하게, 그리고 정신없이 보낸 결과 2년차부터 슬슬 희망이 보였다. 손실사업들도 정리되고, 경영진들 중에서도 멘탈 약한 직원들은 다 퇴사를 하고, 이른바 집요한 '생존자들'이 남아있는 조직으로 바뀌어갔다. 한 3년 정도 이런 일들을 겪으니 나랑 W회장님이 쏟아내는 신사업에 대한 호기심을 경영진들은 집요하게 검증하고, 얌체같이 골라서 실행하는 요령이 생겨난 것이다. 골칫 덩어리였던 오프라인 사업부분은 이제 100억원 가까이를 벌어내며 업계 1등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회사는 당초 투자 시점 대비 3년 만에 4배 가까이 커지게 되었다. 집요함과 호기심이 밸런스를 이룰 때 우리의 투자는 구원의 빛을 보게 되었다.

다시 오늘로 되돌아오자.

미국과 러시아, 금리, 주식시장, 선거 그리고 코로나가 판치고 있는 대불안의 시대에 여전히 살고 있는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무턱대고 호기심과 끈기를 가지라고? 이런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다. 자자, 비법 공개로 요약해보자.

(1) 투자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제1요령: 사회적 거리 안 두기

내가 갖고 있는 지적 호기심의 제1원천 소스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물론 신문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책도 본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경험, 그리고 쓸 수 있는 네트워크가 죽어있는 활자보다도 더 강력하다고 본다(최소한 나는 그렇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지속적으로 싸돌아다니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본다. 그리고 그들이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에 피가 끓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의견과 그 근거들을 물어보면서, 그들의 전공 과목들을 귀동냥하면서 새로운 섹터를 발굴하고, 기존 투자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다. 물론 치사하게 듣기만 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도 이야기해 보고,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이런 저런 나의 비법들을 격렬히 주장한다(이렇게 뻔뻔하게 글까지 쓰지 않는가?).

어제만 해도 서울대와 하버드, 언론사와 법무법인, 그리고 유니콘 기업의 창업맴버에서 외국계 회사 대표까지 지낸 동생 녀석이 다 때려치고 시작한 메타버스 사업에 대해 신나게 듣고, 놀리고, 이야기했다. 우리도 마침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 및 미디어 사업인 B회사에 투자를 하고 있는 찰나, 내 후배인 S대표의 인사이트는 알차고 기름졌다(S야, 내가 B회사랑 연결해주고 필요하면 투자처도 끌어줄께, 화이팅!). 좋은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열린 마음으로 듣고, 그 열정을 나누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무엇이 연관돼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한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사람이면 공격적인 사람을, 아이디어 근육맨이면 실행 근육맨을, 문과생이면 이과생을 만나라는 점이다. 간혹 끼리끼리 모여서 똑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동조하며 위로하고 위로받는 모임들이 있는데 필자는 비추한다. 무턱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소일거리를 찾는 것과, 인맥에 투자하는 것을 절대 혼동하면 안 된다. 비판없는 격려는 나태를 낳고, 나태한 천재에게는 상대적 박탈감만이 기다릴 뿐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하나? 삐딱선을 타신 독자분들께서는 금수저만 가능하다는둥, 학연지연 덕이 없으면 힘들다는둥 토를 다시겠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내가 보는 한 가지 기준은 에너지 레벨. 꼭 하나 더 붙이자면,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경험해본 사람.

이러한 성공은 비단 수백 억, 수천 억을 번 사람이 아니다. 자기 브랜드를 론칭해 본 사람, 자기 집을 지어본 사람, 자기 책을 써 본 사람, 자기 틱톡 계정을 키워본 사람, 하다 못해 자기 태닝숍을 내 본 사람,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직업에 있는 사람이라도 좋다. 젤네일이 막 유행이던 수 년 전 압구정에서 일갈을 이룬 O네일아트숍의 주인과 우연히 친해졌는데, 몇 년 후 국내에 있는 부착형 네일 회사가 전 세계 수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읽게되었다. 다름이 아니고 이 O네일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던 바로 그 회사. 나에겐 뼈아프게 놓쳐버린 투자 기회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 빛나는 원석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 옆에 내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2) 투자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제2요령: 나누기

에너지 레벨이 높은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얻었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은 뭘 해야하나? 자, 이제 실행 근육이 작동할 시간이다. 우리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이 다 할 수 있는 만능 슈퍼맨은 (우리주변에)없다는 점이다. 이 점을 인정하면 그 다음 단계는 쉽다. 바로 드림팀을 짜는 것이다. 그 드림팀에는 반드시 역할 분담을 해 줄 세 명이 필요하다: (i) 에너지가 넘치는 몽상가, (ii) 완벽주이자이자 내성적인 관리자, 그리고 (iii) 삐딱선을 즐겨 타는 비판자.

이런 역할을 나눔에 있어서 내가 즐겨하는 '설거지' 항목이 있다. 바로 각자 본인의 위치와 역할이 어딘지, 그리고 업사이드와 리스크를 어떻게 나눌지, 언제까지 기대하는 결과물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는 것. 내 주변에선 이런 세세한 실행상의 역할을 하고 진도를 체크하는 것이, 황당하고도 위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이렇게 꼼꼼하게 관리하는 역할이 있냐 없냐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냐 없냐를 결정한다. 우리같은 PE 투자자가 몽상가적 리더십으로 탄생한 기업들을 인수해서 종종 더 크게 키우게 된 경우가 이런 케이스겠다. 반대로 "나 라떼는 말이야, 저런 아이디어가 분명히 있었는데 말이야…저 창업자는 운이 좋았어. 어쩌구 저쩌구"하는 분들은 대부분 이런 실행 근육이 없는 분들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이다.

투자로 돌아가서 나의 경우 점점 더 많은 상황에서 성장 자금을 투자할 때, 사업 모델보다 더 경영진의 하모니, 즉 궁합을 많이 본다. (i)~(iii)까지가 잘 있는지, (i)과 (ii) 중 누가 리더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투자를 할지 말지를 곧잘 결정한다. 혹은 셋 중에 하나가 마침 없는데 내가 딱 맞는 사람을 알 경우, 이런 건 무조건 고고싱이다. 사업 모델은 바꾸면 되는데 핵심 경영진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스타트업이나 성장기에 있는 신사업은 더더욱 그렇다.

(3) 투자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제3요령: 일단 질러라 (Put your skin in the game!)

마지막으로 투자의 인사이트를 얻는 가장 쉽고 중요한 스텝은 이른바 '물려보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지난 20년간 3배 이상 번 (거의 모든)투자 사례가 중간에 이른바 지옥에 한 번 갔다 왔더 사례다. 일단 내 돈이 물리면, 더욱 더 절실히 그 산업을 공부하고 경영진과 상의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을 내 본다. 나도 이런 지옥 여행 없이 무난하게 제발 돈을 벌고 싶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고, 투자는 전쟁터다. 투자가 어려워야 아무나 못 들어오고, 그래야 먹을 것이 있는 것이다.

개인 투자는 나 말고 전문가가 많을테니, 중소·중견기업들, 혹은 투자가 아직 낯선 그룹 오너분들 혹은 그 오른팔 왼팔 분들께 팁을 하나 드려보겠다. 신사업에 베팅을 한다고 해서 연봉 3억짜리 임원을 투자은행에서 데려온다든지, 회계법인 팀을 통째로 모셔올 값이면, 그 전에 작은 금액이라도 한 번 담구어 보는 걸 추천한다. 50억도 좋고 100억도 좋다. 너무 많다고? 아, 좋아 그럼 기분이다, 10억.

이렇게 그룹 혹은 기업에서 큰 부담이 안 되는 금액을 관심있는 기업에, 혹은 관심있는 기업에 투자를 하는 투자회사(예를 들면 우리 회사)가 운용하는 펀드에 출자를 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투자 대상을 고르는지, 어떻게 팀을 짜는지, 어떻게 실사하는지, 어떻게 관리하는지, 어떻게 매각하는지 지근 거리에서 바라보며 배워 보셔라. 뭔가 들어본 이야기같다고? 맞다. '에너지 레벨이 높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의 거의 회사 버전 조언이다. 무턱대고 자꾸 만나서 딜만 보여달라고 하면 1~2년은 만날지 몰라도 양쪽 다 지친다. 다만 몇 억이라도 서로 묶여 있으면 서로 부담도 갖고, 절실함도 생기며, 위기가 와도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이렇게 지르기 전까지 절대 투자는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같은 경우 신입 사원들을 뽑을 때 반드시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자기 돈을 투자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남의 돈 수천 억을 관리한다는 건 넌센스다.

펀드에 출자하거나 소수 지분에 투자하는 게 너무너무 어렵고 무섭고 낯설다면? 아, 좋다. 100보 양보해서 그럼 비슷한 상장사 주식에 투자해보시라. 그것도 어려우면 관심있는 섹터 ETF를 법인 계좌로 투자해서 성과를 한 번 보셔라. 이렇게 돈맛, 쓴맛을 같이 본 후, 그래도 관심이 생기면 투자로 뛰어들면 된다. 너무 쓰다고? 그럼 떠나셔라. 투자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중요하지만!)만능은 아니다.

오늘도 말이 너무 길었다. 내가 즐겨쓰는 말 중에 '맹모삼천지교'가 있다. 이사 다니면서 다주택자가 되라는 소리가 아니고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끊임없이 공부로 기초를 다지고, 이를 활용해서 지위와 재력을 쌓아라"라는 뜻이다. 잘 모르는 분들도 있는데, 맹자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단기지교를 두려워하지 않던 초강력 멘탈 트레이너 어머니의 이끌림 덕분에 당대의 최고의 철학자이자 리더가 된 것뿐 아니라, 상당한 부와 권력을 이루었다.자, 이제 핸드폰을 꺼내보자. 주소록을 뒤지자. 에너지 높은 친구들을 찾아 하트를 날리자. 이 순간 우리의 미래는 한꺼풀 더 밝아질 것이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