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김어준과 인터뷰를 한다면…" [좌동욱반장의 여의도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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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시대정신은 사회 통합, 기성 정치인 문법 따라가선 안돼“윤석열 후보가 방송인 김어준과 인터뷰를 하면 어떨까요”
윤석열, 안철수와 단일화 협상도 조금 손해보듯 임해야
아흔아홉가지 생각 달라도 정권교체 생각 같다면 함께 뭉쳐야
자타공인 국민의힘 ‘브레인’으로 평가받는 한 의원이 사석에서 농담처럼 건넨 말입니다. 대화 분위기가 한껏 좋아졌지만, 저는 말속에 뼈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얼핏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야권 1위 대선 후보입니다. 반면 김어준은 여권 지지자들이 ‘영향력 1위 방송인’이라며 추켜세우는 사람입니다. 굳이 리스크를 안고 여권에 편향된 방송인과 인터뷰를 할 필요가 있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이미 여의도 문법에 길들여진 기성 정치인입니다. 인터뷰를 하겠다고 줄 서 있는 보수 성향 언론인들도 수두룩합니다. 최근 선거를 지켜보면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이런 여의도 문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낙연, 정세균, 홍준표, 유승민 등 기라성 같은 준비된 정치인을 모두 제치고 국회 경험이 전혀 없는 이재명, 윤석열 후보가 대권 본선에 올랐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어떤가요? 보수정당이 국회 경험도 없는 ‘30대 중고 신인’을 당대표로 뽑았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여의도식 정치에 국민들은 실증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윤석열에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권력에 늘 순종하는 ‘검사’들과 달랐습니다. 자기 자리, 우리편 자리부터 챙기고 보는 통상적인 정치인들과도 다릅니다. 김어준이 삐딱하게 검증하지 않을까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윤석열이 실수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의구심을 한다면 ‘십중팔구’ 여의도 정치인입니다. 참모들도 대개 안전한 길을 권하기 마련입니다.
이번 대선 과정을 돌이켜봅시다. 윤 후보가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나요. 실수했다고 지지율이 꺾였나요? 윤 후보의 지지율이 꺾인 가장 큰 이유는 실수에 대응을 제대로 못하거나, 내부에서 분열했기 때문입니다. 부인 김건희 경력 부풀리기 의혹이나 전두환 발언 등에 사과를 미루고 미루다 탈이 났습니다. SNS를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검증하는 시대에 국민들은 일회성 실수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럽습니다. 왜 실수를 했는지, 사과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지 여부를 생생히 검증할 수 있어서입니다. 저는 야당 반장입니다. 한쪽으로 편향된 김어준을 정통 언론인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김어준과 인터뷰를 권하는 건 기존 정치인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의미입니다. MBC, CBS, YTN 등 보수당에 다소 비판적인 언론들에게 인터뷰 기회조차 주지 않는 현재의 모습은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혹시 참모들이 후보의 뜻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할 겁니다.
더 큰 대의가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초심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내로남불’ 문재인 정권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사회통합을 우선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설사 본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국민의 40%는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그런 국민들을 보듬지 못하면 문재인 정권이 상징하는 586세대의 낡은 정치의 틀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의 대변자들과 권력을 나누려 할 때,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권력도 커집니다.
야권 단일화도 같은 맥락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흔 아홉가지 생각이 달라도 한 가지 뜻이 같다면 같이 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는 아흔아홉가지가 같은데, 한두 가지만 다르다고 국민들은 보고있습니다. 정치는 타이밍입니다. 선거 분위기가 조금씩 윤 후보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안 후보와 단일화를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이준석 대표도 윤 후보가 대세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재명 후보와 격차는 나날이 줄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확실히 바꾸려면 강자가 약자에 양보하는 자세로 단일화 협상이 진행돼야 합니다.
“만약 안철수가 이기면 어떡하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정치 소인배’입니다. 정권교체 열망을 이루고 통 크게 물러날 수 있다는 진심에 국민들은 더 열광합니다. “조금 손해보는 정치인이 결국 이긴다”는 건 동서고금을 망라한 역사의 진실입니다. 누가 손해보려는 입장인지는 국민들이 냉철하게 지켜볼 것입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