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빨랫줄, 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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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빨랫줄
유은정하늘에 고민 하나 널어놨더니
바짝 말라 사라져 버렸다
아쉬움도 하나 널어놨더니
슬며시 바람이 가져갔다
내 마음도 널어보았더니
사랑비가 쏟아지더라너의 마음도 널어보면
뭐가 내릴까?
[태헌의 한역]
曬衣繩(쇄의승)
一曬苦悶於天中(일쇄고민어천중)
乾燥而滅無尋處(건조이멸무심처)
又曬一遺憾(우쇄일유감)
天風暗帶去(천풍암대거)
還曬吾人心(환쇄오인심)
愛雨忽沛然(애우홀패연)
若曬吾君心(약쇄오군심)
何物自此傳(하물자차전)[주석]
* 曬衣繩(쇄의승) : 옷을 <햇볕에> 말리는 줄, 빨랫줄. ‘曬’는 햇볕에 쬐어 말린다는 뜻이다.
一(일) : 한 번, 한 차례. / 苦悶(고민) : 고민. / 於天中(어천중) : 하늘 가운데에, 하늘에. ‘於’는 처소를 나타내는 개사이다.
乾燥而滅(건조이멸) : 말라서 사라지다. ‘乾燥’는 마르다, 말린다는 뜻이다. / 無尋處(무심처) : 찾을 곳이 없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又(우) : 또, 또한. / 遺憾(유감) : 유감, 아쉬움.
天風(천풍) : 보통은 하늘 높이 부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나 그냥 바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 暗(암) : 몰래, 슬며시. / 帶去(대거) : 데리고 가다.
還(환) : 다시, 게다가. / 吾人(오인) : 나. / 心(심) : 마음.
愛雨(애우) : 사랑 비. 원시에 쓰인 “사랑비”를 한자로 조어(造語)해본 말이다. / 忽(홀) : 문득, 갑자기.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沛然(패연) :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모양.
若(약) : 만약. / 吾君(오군) : 당신, 그대, 너.
何物(하물) : 무슨 물건, 무엇. / 自此(자차) : 이로부터, 빨랫줄로부터.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傳(전) : 전하다, 전해지다. 원시의 “내릴까”를 압운(押韻) 등을 고려하여 바꾸어본 표현이다.
[한역의 직역]
빨랫줄
하늘에 고민 한 번 널어놨더니
말라 사라져버려 찾을 곳 없다
또 아쉬움 하나 널어놓았더니
하늘 바람이 슬며시 데려갔다
다시 내 마음 널어보았더니
사랑 비가 문득 쏟아지더라
만일 너의 마음 널어보면
무엇이 여기서 전해질까?[한역 노트]
<진주난봉가>의 한 대목처럼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는 검게 빨았다면, 이제 이것을 빨랫줄에 널어 말려야 할 것이다. 허공에 쳐진 빨랫줄은 햇살과 바람으로 빨래를 마르게 하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요긴한 장치이다. 유은정 시인의 이 시는 바로 그런 빨랫줄에 젖은 옷들을 널어 말리는 데서 착안하여 지은, 이른바 생활시 계열의 작품이다. 빨래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을 매개로 하여 삶의 지향점 내지는 가치관을 내보인 이러한 시는, 우리를 긴장시키지 않기에 무엇보다 읽기가 편하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제목이 “빨랫줄”이기는 하지만 빨래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빨래를 너는 동작과 햇살이나 바람에 의해 빨래가 마른다는 사실을 빌려와 시의(詩意)를 전개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빨랫줄에 널 수 없는 것조차 널 수 있게 되었다. 이 발상의 전환이 바로 시인의 득의처(得意處)가 아닐까 싶다. 원시의 1연과 2연은 그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작성된 시구이다. 1연의 “고민”이 현재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괴로움이라면, 2연의 “아쉬움”은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괴로움이다. 고민이든 아쉬움이든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므로, 시인은 이것을 털어낼 방편으로 빨래처럼 빨랫줄에 널어버리는 것을 상상하였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
3연에 쓰인 “사랑비”라는 말이, 시인이 젊은 세대들이 좋아함직한 대중가요 <사랑비>를 참고하여 사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3연 전체는 빨래를 하여 빨래를 너는 기분으로 내 마음을 널어보자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면서, 사랑스럽지 않던 것조차 모두 사랑스럽게 보이게 되더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쏟아져 내린 것이 바로 사랑비라는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씻어내고 말려버리자 한 사람이, 혹은 많은 사람이 내게 사랑으로 다가오더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경우로 보든 사랑비가 시인에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었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 나오는 “너”는 누구일까? 시적 화자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한정시켜버리면 이 시는 사랑을 노래한 시가 되지만, 이 시를 읽는 독자로 범위를 확대시키면 사람들에게 빨래하는 기분으로 본인의 마음자리를 깨끗하고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보기를 권한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뜻으로 쓴 것인지는 시인이야 알겠지만, 독자들은 모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오히려 즐거울 수 있다. 상상의 나래는 시인이 펴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펴는 것이므로……
여담(餘談)으로, 역자는 널 수 없는 것을 널어 말리는 시인의 시상을 따라가다가, 말릴 수 없는 것을 말린다고 한 중국 진(晉)나라 시절 학륭(郝隆)의 일화를 불현듯 떠올리게 되었다. 잠시 아래에 소개하기로 한다.
칠석날에 어느 부잣집이 좋은 옷들을 햇볕에 말리는 것을 보고는, 학륭이 땡볕에서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낸 채 누웠는데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나는 뱃속의 책을 말리고 있는 중이오.”라고 하였다는 일화에서 생겨난 ‘쇄복중서(曬腹中書:뱃속의 책을 말린다는 뜻)’라는 성어가 있다. 이 성어가 현시(顯示)한 것은 사람들을 웃기려고 취한 우스꽝스런 행동이 아니라, 허위에 찬 당시 위정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해 취한 뼈있는 행동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과시하는 행동이기도 하였다. 힘과 돈을 가진 너희들이 가난한 백성들에게서 온갖 것을 수탈하여도, 내 머릿속에 든 공부야 너희들이 어쩌겠느냐는 일갈이었던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여 더 이상 책을 볕에 말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지만, 허위에 찬 위정자들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있으니 역사의 본질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고 한 옛사람의 말이 그저 군소리는 아닌 듯하다.
역자는 4연 8행으로 된 원시를 칠언 2구와 오언 6구로 이루어진 고시로 한역하였으며, 짝수 구에 압운하였으나 전반 4구와 후반 4구의 운을 달리 하였다. 이 시의 압운자는 ‘處(처)’·‘去(거)’, ‘然(연)’·‘傳(전)’이다.
2022. 2. 15.<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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