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00억…45년 토종 브랜드가 백화점 1등 하는 이유는?

최장수 영캐주얼 ‘톰보이’가 살아남은 비결
'논노 프랑소와즈, 파세르...' 1970년대 태어나 1990년~2000년대 국내 패션계를 주름잡던 여성 영캐주얼 브랜드 이름이다. 대다수 패션 브랜드는 2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50~60대를 대상으로 하는 마담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1977년 태어난 톰보이는 단명하는 패션업계에서 45년째 여성 영캐주얼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인수할 당시에는 매출 100억원대의 브랜드였으나 현재는 1000억원대로 성장했다. 국내 패션 브랜드의 수명이 5년 남짓인 점을 고려하면 톰보이의 롱런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45년째 롱런하는 토종 브랜드 톰보이

13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스튜디오톰보이는 지난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현대백화점 무역점 등 주요 수도권 백화점 여성 캐주얼 브랜드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신세계센텀시티점 등 2개 지방 백화점에서도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유행에 민감한 국내 패션시장에서 토종 브랜드로 45년째 명맥을 이어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30대 구매 비율이 40%에 이를 정도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톰보이는 1977년 세상에 나온 국내 1세대 여성 캐주얼 브랜드다. 정장브랜드가 전부였던 1970년대에 찢어진 청바지와 티셔츠 등 당시에는 생소한 옷을 내놓으면서 여성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세월 앞에서 브랜드는 늙어갔다. 2011년에 최종 부도나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인수했다. “한국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정유경 총괄사장의 결단이 있었다. 이 브랜드는 10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가 됐다.
1990년대 유행하던 패션 브랜드 중 현재까지 백화점 매출 1, 2위를 다투는 브랜드는 현대백화점 한섬의 시스템과 스튜디오 톰보이가 전부다. 주요 소비층이 나이가 들면서 브랜드도 함께 노후화됐다. 조이너스, 꼼빠니아 등 전통 패션 브랜드는 50~60대를 대상으로 하는 마담 브랜드가 됐다. 브랜드 논노는 무한 가격경쟁으로 시장에서 철수했다. 지난달 새단장을 마친 현대백화점 영캐주얼 전문관 유플렉스에서도 시슬리, 에고이스트, 끌로디피에로, 나이스크랍 등 1990년대 유행한 패션 브랜드가 대거 교체됐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가격을 경쟁적으로 낮추는 바람에 브랜드 간 차별성이 사라지고 가격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소비자들이 떠났다”고 말했다. 다만 1990년대 브랜드 톰보이와 마리떼프랑소와저버 등은 재기에 성공했다. 패션업계에서는 도산 위기에도 가격 인하를 하지 않아 브랜드 이미지가 타격이 적었다고 평가했다.

◆10년 투자해 새로운 브랜드로 탈바꿈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11년 톰보이를 인수한 뒤 디자인부터 확 바꿨다. 보이시한 디자인을 버리고 남녀를 구분 짓지 않는 젠더리스 패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통 큰 여성용 정장을 내놓는 등 편안한 스타일의 의류를 출시하자 20~30대 직장인 여성을 중심으로 톰보이를 찾는 수요가 꾸준히 늘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새로 단장하고 꾸준한 투자를 통해 브랜드를 회생시켰다.
톰보이는 최근 매장 디스플레이와 인테리어까지 모두 변화를 주고 있다. 전국에 120여개 매장 중 24개는 매장 크기를 키우고 톰보이의 다양한 라인을 넣는 등 실험을 하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는 톰보이가 2000억원대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을지 대해 주목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19년에 톰보이 남성과 키즈라인을 출시한 뒤 같은 해에 중국에 진출해 10곳에 매장을 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