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 최초 빙상 金' 에린 잭슨…동료애가 낳은 기적


"특별히 선구자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이 금메달로 앞으로 더 많은 소수자들이 동계스포츠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에린 잭슨(30·미국)이 동계올림픽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잭슨은 13일 중국 베이징의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37초 04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흑인 여성이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따낸 순간이다. 잭슨은 플로리다 출신으로 인라인 스케이터로 활약했다. 세계대회에서 11차례 메달을 딸 정도로 최고의 인라인 스케이터로 인정받았다. 여러차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을 권유받았지만 "추운게 너무 싫다"며 계속 마다했다.

하지만 올림픽은 포기할 수 없는 무대였다. 잭슨은 올림픽 출전을 위해 2017년 스피드 스케이팅을 시작했고 1년만에 2018년 평창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기염을 토했다. 흑인 여자선수 최초로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대표로 출전한 평창 대회에서는 24위에 그쳤지만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유력한 금메달 주자로 꼽혔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지난달 미국 대표선발전에서 대 이변이 일어났다. 잭슨이 스케이트날에 걸리는 실수를 하면서 3위에 그쳐 올림픽 출전 티켓을 놓친 것.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잭슨의 20년 지기이자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브리트니 보(34)가 출전권을 양보했다. 자신의 주종목인 1000m와 1500m에서 출전권을 따낸 상태였던 보는 잭슨을 위해 500m 출전을 포기했다. 보는 "선발전에서는 내가 우승했지만 세계랭킹이 어떤지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에린은 세계랭킹 1위였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보의 양보는 또다른 기적을 낳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몇몇 팀이 이 종목 출전권을 반납했고, 이중 하나를 미국이 확보했다. 그결과 보도 500m에 출전기회를 얻었다.

이날 결승전에서 잭슨은 역주를 펼친 끝에 다카기 미호(일본)를 0.08초 차로 제치고 '흑인 여성 최초로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따는 새 역사'를 썼다. 보는 16위에 그쳤지만 잭슨의 우승에 아낌없는 축하와 박수를 보냈다. 그는 "나는 잭슨이 엄청난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오늘(13일) 잭슨은 '올림픽 챔피언'의 자격을 보여줬다"고 말했다.보는 '차별'이 화두인 시대에, 잭슨의 우승이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잭슨이 거둔 성과는 '자신과 다른 면이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고, 때로는 우러러봐야 한다는 걸 알려줬다"며 "잭슨은 정말 훌륭한 선수이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보는 오는 17일 열리는 1000m에서 메달을 노린다. 그는 이 종목 세계기록 보유자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