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는 피하자'…펀드 내 현금 금융위기 이후 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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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 긴축·우크라이나 사태에국내 주식형 펀드에 현금이 나날이 쌓이고 있다. 무리해서 주식을 사기 보단 일단 현금을 쥐고 있겠다는 펀드매니저가 늘어나면서다. 자본시장의 프로인 펀드매니저 조차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대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펀드매니저도 "살 만한 주식이 없다"
펀드 내 현금 늘어…2009년 이후 최다
금융·통신 등 방어주 눈길도
○주식형 펀드 내 현금 13년만 최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주식형펀드(공·사모)가 보유 중인 예금은 총 2조5289억원이다. 월말 기준으로 2009년 5월(3조4194억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말에만 해도 1조9963억원에 머물렀던 주식형 펀드 내 예금은 지난달 이후 부쩍 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2조7570억원까지 늘어나기도 했다.펀드 내 보유현금은 변동성이 이어지거나 시장이 더 오르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늘어나는 성향을 보인다. 이후 주가가 추가로 상승하거나 한 번 조정을 받으면 펀드매니저들은 다시 주식을 사고 갖고있던 보유 현금은 줄어든다. 보유현금이 많았던 2009년 5월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딛고 주식시장이 파죽지세로 오른 뒤 추가상승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시기였다.Fed의 긴축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장에선 인플레이션이 가파른 탓에 Fed가 다음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국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부각된 상태다. 이 영향으로 15일 코스닥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51% 낮은 839.92로 장을 마치며 2020년 11월 13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초 3000선 가까이서 출발한 코스피지수 역시 연일 급락 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1.03% 떨어진 2676.54를 기록하며 장을 마감했다. 지정학적 우려에 15일 장 한때 원·달러 환율은 1200원을 돌파했고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은 2662억원어치 주식을 팔았다.
한 사모펀드 매니저는 "현재 증시에 마땅히 호재가 없는 상황"이라며 "긴축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진전상황을 봐 가며 당분간 현금을 늘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대안은 금융·통신·음식료 등 방어주
운용업계의 또 다른 대안은 방어주다. 펀드매니저 입장에선 아무리 변동성이 심하더라도 펀드 내 현금을 마냥 늘릴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펀드의 수익률을 방어하는 것도 펀드매니저의 역할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시장을 이겨야 하는 것 역시 펀드매니저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배당으로 안전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금융주나 변동성에 강한 통신주 등이 대안이 되고 있다.올해 들어 지난 14일까지 기관투자자가 3번째로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은 KT로, 6376억원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1위가 LG에너지솔루션(3조4105억원), 2위가 KODEX 200선물인버스2X(6376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상장 이후 시가총액만큼 펀드매니저들이 기계적으로 매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배당과 금리인상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신한지주(10위·871억원)와, 판가 인상으로 원가 인상을 상쇄할 수 있는 농심(12위·729억원) 등도 기관투자자의 선택을 받았다.
또 다른 공모펀드 매니저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단 현금 비중을 늘리고 있다"면서도 "펀드를 운용하는 이상 현금을 일정부분 이상 늘릴 순 없기 때문에 배당주 등 방어주 위주로 매수 중"이라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