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에 백기 든 동대문…7년 만에 옷값 10%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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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원단 가격·인건비 올라도“작년엔 마진을 포기하고 가격을 동결했는데 봄 상품부터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습니다.”
마진 줄여 버텼는데 이젠 한계"
실제 소비자가는 20~30% 뛸 듯
유가 급등에 화학섬유값 치솟아
'폴리에스테르 원료' PTA 44%↑
SPA브랜드 탑텐도 원가 "20% 상승"
유니클로, 인상폭·시기 저울질
동대문시장에서 10년째 의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39)는 “원사 가격뿐 아니라 구인난으로 인건비까지 뛰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국내 최대 의류도매시장인 동대문시장이 7년 만에 일제히 도매가격을 인상했다. 지난 수년간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에도 마진율을 조절하며 버텼지만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황은 버티지 못하고 백기투항한 것이다. 동대문은 국내 패션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도매시장이다. 업계에서는 10% 안팎의 동대문 가격 인상은 패션플랫폼 등에서 의류 소비자가격이 20~30% 오르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다. 중저가 의류를 판매하는 유니클로와 탑텐 등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도 가격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폴리에스테르 가격 급등
16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동대문 도매상가의 봄 시즌 의류 가격이 10%가량 일괄 인상됐다. 한 장에 8000원이던 티셔츠를 1000~2000원 이상 올린 가격에 팔고 있다. 동대문 도매상이 일제히 가격을 올린 것은 2015년 이후 7년 만이다. 가파른 원자재 가격 및 물류비용 상승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다. 화학섬유(폴리에스테르) 가격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유가 상승 여파로 빠르게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화학섬유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최근 원화 가치까지 하락하면서 부담이 더욱 커졌다.이머징텍스타일에 따르면 화학섬유의 원료가 되는 PTA(고순도 테레프탈산)와 MEG(모노 에틸렌글리콜) 등의 가격 상승폭이 특히 크다. PTA는 t당 784달러로 지난해 1월(546달러) 대비 44% 뛰었고 MEG도 같은 기간 17%(100달러) 올랐다. 화학섬유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에너지 소비 이중통제 정책으로 화학섬유 공장 가동률이 떨어진 반면 섬유·의류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고 설명했다.작년만 해도 동대문 상인은 인건비를 줄이면서도 가격 인상은 꺼렸다. 하지만 이번 봄·여름 시즌부터는 동대문 상인의 90%가 가격 인상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중현 동대문상가 회장은 “원사 가격이 30% 오르더라도 도매에서는 인상분을 가격에 다 반영할 수 없어 그동안 마진을 줄여가며 가격을 책정했다”며 “이젠 가격을 맞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SPA 브랜드 줄줄이 인상
중저가 의류를 대량 생산해 판매하는 SPA 브랜드들도 동대문시장과 함께 원자재값 인상의 영향을 빠르게 받고 있다. 상품을 싸게 팔아 이익을 남기는 박리다매 방식이라 원자재 가격 상승에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SPA 브랜드는 젊은 층이나 서민층이 주 고객이라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일부 SPA 브랜드는 이미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국내 SPA 브랜드인 탑텐은 최근 인상된 원사 가격을 반영해 올해 가격 인상을 고려중이다. 탑텐 관계자는 “원가가 약 20% 상승했다"며 "가격인상에 대한 반영시기는 현재 고려중”이라고 말했다.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지난달 13일 열린 결산회견에서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카자키 다케시 패스트리테일링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도쿄에서 열린 실적발표회에서 “재료비와 물류비 상승,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부 품목에 대한 가격 인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언제, 얼마나 가격을 올릴지는 정해지지 않았다.SPA 브랜드를 시작으로 패션 플랫폼에서도 가격 인상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동대문 옷을 판매하는 A패션 플랫폼은 도매가격 인상에 따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 플랫폼 관계자는 “판매자들이 자체 제작한 상품을 활성화하는 등 가격 인상을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패션업체는 인상분을 마냥 반영할 수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격 인상 시 자칫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랜드 스파오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패션기업에 가격 인상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며 “매장 효율화 등으로 최대한 가격 인상을 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