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우크라이나의 두 장면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의 시청 광장에는 ‘칼레의 시민’이란 로뎅의 유명한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이 세워진 데는 전설 같은 일화가 있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 포위된 칼레는 1년간 맹렬히 저항하다 결국 투항하고 만다. 칼레시의 항복사절단을 맞은 영국왕은 모든 시민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도시 대표 6명의 목숨을 요구한다. 희생자 6명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던 중, 칼레의 최고 부자가 먼저 죽음을 자청하고 나섰다. 이어 시장, 판사 등 최고위층이 손을 든다. 이들의 교수대 처형 직전, 어렵게 임신한 영국 왕비가 왕에게 선처를 애원하고, 왕비의 간청을 못 이긴 왕이 이들을 사면해 줬다는 감동 스토리다.

서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에는 6·25전쟁 때 미8군 사령관인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당시 밴플리트 장군의 외아들 밴플리트 주니어도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는 평양 북쪽의 순천 지역에 출격했다가 격추되고 만다. 수색작업이 전개됐지만, 얼마 안 있어 “내 자식 찾는 일로 다른 장병들이 위험해지면 안 된다”는 장군의 지시로 중지됐다. 밴플리트 주니어는 북한군에 체포된 뒤 소련으로 이송돼 혹독한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6·25전쟁에는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있었다. 그들 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그제 우크라이나발(發) 외신사진 중에 79세 된 백발의 할머니가 교관 지시에 따라 엎드려서 사격연습을 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이 할머니는 “나는 총 쏠 준비가 돼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집과 도시,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했다. 같은 시간 수도 키예프 공항에서는 유력 정치인과 올리가르히(신흥재벌)들을 태운 전세기가 연이어 출국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20명 이상의 의원과 금융·해운·철강·광산 부호들이 백척간두의 고국을 버리고 해외로 도피했다.

‘칼레의 시민’ 조각상 속 6명은 결코 영웅의 형상이 아니다. 고개를 떨구고, 머리를 감싸 쥐고, 모든 것을 체념한 죽음 직전의 비참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들이 위대한 것은 다른 모든 시민을 살리기 위해 죽음이라는 극단의 두려움에도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는 것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총을 든 우크라이나 할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태가 진정된 뒤 돌아온 도피자들이 과연 할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까 싶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