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절벽, 꽁꽁언 한탄강…한폭의 겨울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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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주상절리길 트레킹걷기 여행이 열풍입니다. 사실 걷기 여행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유행했지만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가장 각광받는 여행 패턴으로 떠올랐습니다. 걷기 여행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간편하게 떠날 수 있어 가성비가 높죠. 단지 안전한 여행이라는 이유만으로 걷기 여행이 뜨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다비드 르 브르통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사회학과 교수는 “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고 했습니다. 걷기를 통해 여행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삶의 깊은 성찰과 철학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주말 한탄강의 비경을 따라 걷기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궁예가 들렀다던 '드르니마을' 지나면
작년 11월 개방된 '한탄강 하늘길' 보여
스카이전망대·쉼터마다 사연 한가득
한탄강을 발아래 두고 벼랑 사이를 걷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트레킹의 시작점은 두 군데다. 강원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드르니마을 매표소와 순담매표소 중 어느 곳에서 시작해도 좋다. 물윗길까지 걷고 싶다면 드르니마을에서 들어가는 편이 낫다. 드르니마을은 ‘왕이 들렀다가 간 마을’이라는 뜻이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고려 왕건에 쫓겨 피신할 때 이 마을에 들렀다가 나갔다고 한다.전에는 한탄강의 깊고 험한 골짜기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배를 타야 했지만 최근 한탄강을 감상하는 법이 달라졌다. 철원군은 지난해 11월 한탄강 협곡의 험한 절벽 사이로 길을 내고 일반에 개방했다. ‘한탄강 하늘길’로 불리는 잔도(棧道)다. 잔도는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처럼 매단 길이다. 한탄강을 발아래 두고 벼랑 사이로 걷는 길이다. 지상에서 20~3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길이 3.6㎞나 이어진다. 드르니 전망대에서 얼어붙은 한탄강을 내려다보며 서서히 길을 나섰다.“협곡에 잔도를 설치하는 데 꼬박 4년이 걸렸어요. 공사비가 300억원이나 들었죠. 강 건너편이 경기 포천 땅인데 이쪽에선 자재가 들어올 길이 없어 저쪽에서 협곡을 건너 이리로 줄을 연결해 날랐습니다.” 김영애 한탄강지질공원 해설사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한탄강의 절경을 주마간산 격으로 감상했지만 잔도가 생기면서 주상절리의 협곡을 보다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절경
한탄강 협곡과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해 마그마가 흐른 자리에 생긴 지형이다. 수십만 년 전 북녘땅 평강군 오리산에서 수차례 마그마가 분출했고 한탄강을 따라 철원과 포천, 연천을 지나 파주, 문산까지 100㎞ 이상 흘러온 마그마가 식은 뒤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 작용을 받으면서 주상절리가 형성됐다. 국내에서 유일한 현무암 협곡이다. 2020년 7월 서울 여의도 면적의 400배에 달하는 한탄강 일대 1165.61㎢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됐다.원래 한탄강은 사철 매혹적인 걷기 길로 유명한 곳이었다. 봄이면 분홍색 진달래꽃이 계곡을 물들이고, 여름이면 주상절리길 곳곳에 있는 폭포의 풍광이 장쾌하다. 단풍과 절벽이 어우러지는 가을을 지나 소복하게 눈이 내린 한탄강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다리와 쉼터마다 이야깃거리 ‘풍성’
잔도길은 잘 정비돼 있다. 포인트마다 안내판이 있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곳곳에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됐다. 13개의 출렁다리(잔교)와 10개의 쉼터에는 각각 지질이나 풍경과 관련한 이름이 붙었다. 현무암 주상절리가 급경사를 이루는 ‘쌍자라바위교’, 주상절리 틈에서 자라는 돌단풍을 만날 수 있는 ‘돌단풍교’, 화강암과 현무암이 공존하는 ‘현화교’, 갈라진 암석이나 지층을 볼 수 있는 ‘단층교’, 빠른 물살에 깎여 우뚝 서 있는 듯한 화강암을 볼 수 있는 ‘선돌교’ 등이 대표적이다.쉼터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동주황벽 쉼터’는 볕을 받아 황토 빛깔로 변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동주는 철원의 옛 지명이다. ‘샘소쉼터’에는 암석 사이로 솟는 샘이 있고 ‘돌단풍쉼터’는 돌단풍이 아름다워 붙은 이름이다. 협곡의 비경이 드러나는 곳에는 전망대를 설치했다. 드르니 스카이전망대, 순담 스카이전망대, 철원한탄강 스카이전망대 등 3개다. 철원한탄강 스카이전망대는 잔도 중간 바닥이 투명한 강화유리로 돼 있어 한탄강 협곡 아래가 아찔하게 보인다.
철원=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