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입양 후 올림피언으로 성장한 3인방…'멋지게 살아왔다!'

아이티 비아노·미국 오언스·노르웨이 아일러츤 등 '멋있는 청춘'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전 세계 약 2천900명의 선수가 출전해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놓고 기량을 겨룬다.각자의 종목에서 한 나라의 국가대표가 돼 '지구촌 스포츠 대축제'에 출전하기까지는 말 그대로 '사연이 없는 선수가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모든 선수의 살아온 과정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부모의 품을 떠난 입양아들의 경우는 아무래도 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야 했을 터다.

그것도 천리 타향인 외국으로 보내진 경우엔 더욱 그렇다.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외국으로 입양됐다가 올림픽 국가대표가 되어 전 세계인 앞에 우뚝 선 선수들이 있다.

먼저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아이티에서 최초의 '동계 올림피언' 영예를 안은 알파인 스키 선수 리처드슨 비아노(20)는 아이티에서 태어나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3살 때 프랑스로 입양됐다.

연중 평균 기온이 25도를 넘는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계속 자랐다면 동계 스포츠를 접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비아노는 프랑스 스키장에서 일하는 양부모 덕에 3살 때부터 스키와 친숙해졌다.비아노는 "프랑스에 와서 처음 눈을 보고 '하얀 가루'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가 다시 아이티와 연결된 것은 2019년이었다.

비아노는 "아이티 스키협회라는 곳에서 전화가 와서 앞으로 아이티 국적으로 뛰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며 "처음에는 믿지 못했지만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비아노는 아이티 스키협회의 연락을 받은 뒤 2019년 국적을 다시 아이티로 변경했다.

이번 대회 개회식에서 아이티 기수를 맡은 비아노는 알파인 스키 남자 대회전에서는 실격했지만 16일 끝난 회전은 출전 선수 88명 중 중상위권인 34위에 올라 아이티의 첫 동계올림픽 출전 역사를 썼다.

그는 "아이티로 돌아가 내가 자란 보육원을 찾았다"며 "나의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다음 세대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 스키 국가대표 카이 오언스(18)는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경우다.

2004년 중국 안후이성에서 태어난 그는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생후 1년이 조금 지난 2005년 미국 콜로라도주의 존과 에이미 부부에게 입양됐다.

콜로라도주는 미국에서 동계 스포츠가 발달한 곳으로 유명한데 오언스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 모굴 경기에 출전했다.

결과는 10위였다.

올림픽이 열린 베이징과 그의 고향 안후이성까지는 1천㎞ 넘게 떨어져 있다.

오언스는 대회 개막을 앞두고 "내가 중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면 (중국과 미국을 오가는) 커다란 원이 완성된다"며 벅찬 느낌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 '카이'(Kai)는 한자로 '이길 개'(凱)를 중국어로 발음한 것이다.

대회를 앞두고 연습 도중 넘어져 얼굴을 다친 오언스는 "중국에서 열린 올림픽에 이렇게 나올 수 있게 돼 정말 감사한 마음"이라며 "또 미국을 대표할 수 있게 된 것도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나라 대구에서 태어나 노르웨이로 입양된 한네 아일러츤(23)은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과 빅에어에 출전했다.

박윤희라는 한국 이름이 있는 그는 한국에서 함께 입양된 오빠(노르웨이 이름 호콘)와 나란히 스노보드 선수로 자랐다.

동계 스포츠 강국인 노르웨이 국가대표로 성장한 아일러츤은 한국말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할 때인 생후 3개월 만에 노르웨이로 떠났지만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와 같은 우리 말로 인사했다.

10살도 되기 전인 2005년과 2008년에 노르웨이 부모, 오빠와 함께 한국을 찾았었다는 그는 '더 커서는 혼자 한국에 또 가겠다'고 마음먹고 2017년에도 왔었다고 한다.

비아노, 오언스, 아일러츤은 공교롭게도 모두 이번 대회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위대한 인생 여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면서 '올림픽에서 메달이 뭐가 중요하냐'는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요즘의 트렌드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