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을 위한 변명 [여기는 논설실]

김원웅 전 광복회장. 연합뉴스
이 글은 얼마전 광복회 회장직에서 자진 사퇴한 김원웅씨가 친구에게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내용의 '가상 편지'입니다. 사실 관계에 근거해 어디까지나 창작한 글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죽창가를 좋아하는 내 친구 보게.
요즘 신문봐서 알고 있겠지. 결국 내가 옷 벗었어. 광복회 57년 역사에 (탄핵) 1호가 되기 싫어서. 그 놈(부하)이 나를 배신할 상인지 진작에 알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다 내 '불찰'이지. 그래도 억울해. '토착 왜구' 언론들은 내가 국가 유공자 자녀에게 줄 장학금을 횡령하고, 가족회사를 국회에 차려놓고 영업하고, 처음엔 그런 비위 사실을 부인하고 되레 언론 탓을 하다, 끝내 사퇴하며 남 탓까지 한 파렴치범이라고 공격하고 있지만 어디 그런게 나 뿐인가.

나를 '존경하는 광복형' '마음의 형'이라고 부른 여당 대선 후보를 보자고. 1조원 가까운 돈을 민간업자들에게 몰아준 배임 의혹에다 성남FC 불법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백현동 개발 특혜, 지역화폐 사업, 성남시 납품및 조달 특혜 등 관련 비리의혹 내용과 규모가 나와 비교할 바가 아니지. 그런데도 반 년 넘게 검찰 조사 한번 안 받고, 오히려 토건 비리 세력의 음모라고 몰아 부치며 청와대를 꿈꾸고 있잖아. 역시 배워야 할 게 많은 동생이야.

그 부인 김혜경씨도 그래. 공무원들을 10년 넘게 몸종 부리듯 하고 남편 법카로 소고기부터 초밥, 샌드위치, 삼계탕 등 맛집 순례를 하고, 관용차를 개인용으로 쓰고, 약 대리처방도 하는 등 실정법 위반 혐의가 차고 넘치는데도 "제 불찰"이라고 두 번 사과하고 끝이야.
부부가 모두 사과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부하에게 잘못을 슬쩍 떠넘기는 '내공'은 역시 수십년 같이 산 덕일까. 어디 그 뿐인가.
위안부 할머니들 후원금 1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내 '친일팔이 동지' 윤미향은 아직도 국회에서 꿋꿋이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어. 버티니 여당 대표도 제명 추진 어쩌구 했지만 별 수 없는 거지. 나도 그랬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윤미향은 그래도 약과지. 이상직은 500억원이 넘는 회사돈을 횡령, 배임한 혐의로 기소돼 법정구속됐지만 항소하며 아직도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어. 직원 600명을 해고하면서 임금, 퇴직금도 주지 않은 친구야. 악덕 기업인의 전형이지만,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라벨이 붙으니 검찰도 함부로 못했지. 나도 진작 청와대에 좀 더 잘할 걸 그랬어.

내 민주당 동지들이 대체로 훌륭해. 친일·적폐 세력과 목숨걸고 싸웠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반인들은 절대 배우지 못할 것들을 습득하고 체화했지. 그래서 이제는 그들을 뛰어넘고 있어. 부동산 투기 의혹 의원 12명이 있지만, 그들이 그렇게 부패세력으로 매도하는 야당에서 같은 혐의로 의원직 사퇴자가 나올 때도 한 명도 옷을 벗지 않았어. 이 정도면 '청출어람'아닌가. 사랑하는 친구.
내가 사실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 “백선엽은 사형감” “박근혜보다 김정은이 낫다”는 등 말을 좀 험하게 했지. 그런데 그게 어디 나 혼자 살자고 한 얘긴가. "대한민국은 반민족 친일”이라는 내 경축사에 문재인 대통령도 박수를 치지 않았나. 정권이 코너에 몰릴 때마다 친일 몰이로 세력을 규합하고 진영대결을 만들어 국면을 전환하는데 도움을 준 게 누군가.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이지 횡령 금액이나 내용이 다른 동지들보다 많지도 않아. 드러난 게 겨우 몇천만원인데. 조족지혈이지. 그리고 나는 스스로 사퇴까지 했어. 버티고 있는, 오히려 큰소리는 치는 다른 동지들에 비하면 휠씬 양심적이지 않아.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