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플루언서 통해 브랜드 쇄신 나선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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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MO Insight 「케이스스터디」2020년 하반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를 앞둔 LG전자 직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행사가 온라인으로만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중장년 브랜드’란 이미지 탈피가 목적
인플루언서 마케팅 비용도 절감
본격적인 메타버스 시대 대비 포석도
화려한 디스플레이로 치장한 초대형 부스의 도움 없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 방법을 고민하던 LG전자는 ‘가상 인플루언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외형에 인공지능 기술로 목소리를 입힌 캐릭터를 통해 LG전자의 기술과 브랜드를 알리겠다는 계획이었다.LG전자가 내세운 가상 인플루언서의 이름은 김래아.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서울에 사는 23세 여성이며 작곡 등 음악과 관련한 활동을 한다.
CES 데뷔 당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팔로워는 6000명이었다. 김래아는 지난해 1월11일 열린 LG전자 CES 2021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3분간 마이크를 잡았다. 호텔 등 특정 공간의 위생을 위해 방역 작업을 하는 ‘LG 클로이 살균봇’과 2021년형 노트북 ‘LG 그램’,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적용한 전문가용 모니터 ‘LG 울트라파인 올레드 프로’ 등을 소개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래아는 팔방미인이 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CES에 모습을 드러냈다. CES에 발맞춰 열린 ‘LG 월드 프리미어’에서 가수 데뷔를 알렸다. 가수 윤종신씨가 대표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는 미스틱스토리와 제휴를 맺고 음반을 낸다는 내용이었다. SNS 활동도 활발해졌다. 현재 그녀의 팔로워 수는 1만5000명에 달한다.
상황 1 MZ 세대엔 ‘올드’ 브랜드
도전 1 브랜드 이미지 쇄신
글로벌 가전 시장을 이끄는 LG전자가 가상 인플루언서 키우기에 열을 올리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업계에서는 브랜드 이미지 쇄신을 첫 번째 이유로 꼽고 있다. LG전자는 세계 최대 가전업체다. 지난해 생활가전 분야에서 27조1097억원으로, 경쟁사인 미국 월풀(약 25조2000억원)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글로벌 TV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달리는 등 입지가 탄탄하다. 문제는 TV와 생활가전의 핵심 구매층이 40대 이상이란 데 있다. MZ 세대가 LG 브랜드 제품을 접할 일이 드문 탓에 ‘올드’한 브랜드로 분류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런 의구심은 지난해 스마트폰 사업을 중단하면서 한층 더 커졌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바꿀 수 있는 묘수로 꼽힌다. 현재 래아의 SNS 팔로워 중 80% 안팎이 MZ 세대다. 이들은 가상 인플루언서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래아가 작곡 작업 도중 배가 고파 편의점에 다녀오는 사진을 올리면 “힘을 내라”는 댓글들이 자연스럽게 뒤를 잇는다. SNS에서 래아의 인기가 치솟으면 ‘연관 검색어’인 LG전자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는 구조다.
상황 2 복마전, 인플루언서 마케팅
도전 2 충성도 높은 인플루언서 확보
가상 인플루언서는 마케팅 도구로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LG전자처럼 일반 소비자들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B2C 기업들은 매년 수백명의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하며 이들에게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문제는 인플루언서들이 요구하는 금액이 매년 올라가고 있다는 데 있다. 300만명 정도의 팔로워를 가진 글로벌 톱클래스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려면 게시물 당 1억원 안팎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가성비’ 면에서 인간 인플루언서보다 우위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가상 인플루언서로 31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릴 미켈라’의 게시물 당 비용은 1000만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LG전자처럼 제조업체가 직접 가상 인플루언서를 선보인 사례는 흔치 않다. 미국의 ‘릴 미켈라’, 가구업체 이케아의 모델로 유명한 일본 ‘이마’ 등은 모두 IT 스타트업이 개발했다.
이들을 마케팅에 활용하려면 가상 인플루언서 개발사들과 별도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 래아는 이들과 구분된다. 다른 기업의 마케팅을 도울 때는 비용을 받을지 모르지만 LG전자가 맡긴 업무는 ‘무료 봉사’를 하게 된다.
가상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그밖에도 다양한 장점이 있다. 인간 인플루언서들은 부적절한 발언이나 스캔들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가상 인플루언서는 돌발악재에서 자유롭다. 인플루언서와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도 가상 인플루언서의 강점으로 꼽힌다.
상황 3 메타버스 등 새 기술 트렌드
도전 3 LG만의 기술력 소구
가상 인플루언서의 제작엔 고도의 AI(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 딥러닝 기술을 통해 수많은 이미지를 학습해야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온다.자연스러운 목소리를 갖추기 위해서도 수많은 음성 데이터 학습이 필요하다. 가상 인플루언서를 잘 만들기 위해선 상당한 AI 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LG전자로선 래아를 통해 자사의 AI 기술력을 뽐낼 수 있던 셈이다.
LG전자가 공개한 ‘래아와의 인터뷰’를 보면 가상 인플루언서가 어떤 과정을 거처 목소리를 얻었는지를 알 수 있다.
래아는 “싱글앨범 녹음을 위해 방문한 녹음실에서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돼 큰 충격에 빠졌다”며 “지하철 안내 방송 목소리, 마트 점원의 목소리 등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찾았고 이를 학습하며 저만의 목소리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의도적으로 이런 내용을 집어넣었다고 보고 있다. 래아가 자신이 가상 인플루언서임을 인지했다는 가정하에 인터뷰가 이뤄져야 소비자들에게 LG전자의 기술력을 알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메타버스 마케팅의 대안으로 꼽힌다. 현실과 똑같은 모습으로 메타버스의 세계 속에서 활동할 수 있어서다. 현실과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일관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래아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을 즐기는 영상과 사진을 게재했다.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언제든지 메타버스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LG전자는 가상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AI 기술력을 소비자들에게 알렸고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는 효과까지 얻었다.경쟁업체와 차별화된 마케팅 도구를 갖췄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SNS는 물론 메타버스 환경에서도 일관된 마케팅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됐다.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은 점점 더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전 세계에서 새로 데뷔하는 가상 인플루언서가 1만명에 이르고 관련 시장 규모도 16조원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송형석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브라질과 스페인 혈통으로 미국 LA에 거주하는 19세 릴 미켈라(Lil Miquela)는 30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유명 인플루언서이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슈퍼모델 슈두(Shudu) 역시 2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이케아 전시장에서 3일 동안 자신이 생활하는 모습을 생중계한 이마(Imma) 역시 35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실제 인간’이 아닌 AI 기술이 만들어낸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라는 점이다. 최근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기업들 역시 마케팅 활동에 실제 인간이 아닌 가상의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사례에 소개된 LG전자의 ‘래아’처럼 애초부터 기업이 제품 홍보 목적으로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직접 개발하기도 한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어쩌면 과거의 전통적인 브랜드 캐릭터, 혹은 쇼윈도 마네킹이 수행하던 역할의 ‘최신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실제 인간과 구분하기 더 어려운 날이 오게 될 것이다.
특별히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MZ세대와의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그들은 일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할 수 있고,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외모, 스타일, 재능을 갖춘 모델로 적절히 ‘창조’될 수 있다. 무엇보다 실제 인간과 매우 흡사한 인플루언서를 개발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소비자들의 주의(attention)를 끌 수 있다.
다만, 일반 소비자들이 버추얼 인플루언서에게 얼마나 공감하고,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불유쾌한 골짜기 이론(Uncanny Valley Hypothesis)”에 따르면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사람들의 호감도가 상승하지만, 지나치게 비슷해지는 순간이 다가오면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이후 극단적으로 더 비슷해지면 호감도는 다시 급격하게 상승한다.
향후에는 법적, 윤리적 문제도 중요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가상의 인물이 아닌 독립적인 의견이 있는 실제 인물로 인지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실제로는 제품 광고이지만, 소비자들이 마치 광고가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면 문제가 된다.
향후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소비자에게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사회적 실재감(social presence)’를 갖춘 모델을 개발하느냐, 일반 대중과 얼마나 밀접한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를 형성하느냐, 또한 앞서 언급한 법적, 윤리적 문제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마케터가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는 이유는 단지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것이 아니라, 결국 소비자의 최종적인 ‘선택’을 받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무작정 최신 기술의 새로운 트렌드를 쫓기 보다는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우리 제품 마케팅에 어떤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준비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인플루언서는 특정 SNS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의견형성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오피니언 리더이다. 연예인 못지 않은, 혹은 연예인을 뛰어넘는 인기와 부를 얻는 인플루언서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인플루언서가 초등학생 희망 직업 4위를 차지한 조사 결과가 등장할 정도다.
인플루언서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시에 인플루언서의 스캔들이나 허위 광고 같은 논란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인플루언서의 대안으로 가상 인플루언서가 등장했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스캔들에 대한 부담이 없고 비용 측면에서도 인간 인플루언서에 비해 이점이 있다.
MZ세대가 가상의 존재에 매우 익숙하다는 점도 가상 인플루언서의 강점이다. MZ세대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에서 가상의 존재를 많이 접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가상 인플루언서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해외에서 유명한 가상 인플루언서는 릴 미켈라(Lil Miquela)다. 그녀는 브라질계 미국인으로 LA에 사는 19세 팝가수다. 2018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방탄소년단 등과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로지가 유명하다. 원래 이름은 ‘오직 단 한 사람’이란 의미의 오로지다. 나이는 22살, MBTI는 ENFP로 재기 발랄한 활동가 유형이다. 로지는 이달 22일 ‘후 엠 아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한다. LG전자의 래아도 가수 데뷔를 앞두고 있다.
가상 인플루언서가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브랜드 태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인플루언서로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진정성’에서는 흥미로운 사실이 나타났다.
언론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텍스트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광고 모델로서 가상 인플루언서를 바라볼 때 사람들은 ‘가짜’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해져 진정성에 의문을 가지는 것으로 분석됐다.MZ세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다른 연구에서는 가상 인플루언서의 진정성이 브랜드 태도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구매의도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 인플루언서를 마케팅에 활용할 때 소비자들이 의문을 갖는 진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고민해야 하겠다.마케터를 위한 지식·정보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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