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낮춘 분양…"계약금 1000만원만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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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시장 냉기에 '파격 분양'서울을 비롯한 전국 아파트값이 조정기를 맞으면서 분양 시장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있다. 청약 경쟁률이 떨어지고 미분양·미계약 우려가 커지자 ‘계약금 1000만원 정액제’ 등 솔깃한 조건을 제시하는 단지들도 등장하고 있다. 중도금 대출이 가능한 9억원 미만으로 분양가를 맞추기 위해 일정을 미루고 분양가를 재산정하는 곳도 있다.
'평택 화양' 계약금 10% 제시
중도금 60%는 무이자 대출
충북 음성선 옵션 무상 제공
'버밀리언 남산'은 중도금 유예
분양가 낮추려 일정 연기도
◆‘혜택’ 늘리는 분양 단지들
18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이달 경기 평택 화양지구에서 분양하는 ‘평택 화양 휴먼빌 퍼스트시티(1468가구)’는 1000만~2000만원만 있으면 계약이 가능한 계약금 정액제를 내걸었다.분양가의 10%에 해당하는 전체 계약금 가운데 1000만원만 내면 계약을 해주고 한 달 내 나머지 계약금을 납입하면 된다. 초기 자금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신세계건설이 부산 명지국제신도시에 선보이는 주거형 오피스텔 ‘빌리브 명지 듀클래스(1083실)’도 같은 조건으로 분양을 받고 있다. 두 단지 모두 중도금 60%에 대해서도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이른바 ‘계약금 정액제’는 지난달부터 지방 중소도시 등을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지방에서도 광역시, 수도권 등으로까지 이 조건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청약을 받은 경북 포항시 ‘포항자이 애서턴’과 경남 김해시 내덕지구 ‘중흥S-클래스 더퍼스트’, 경북 구미시에서 분양된 ‘하늘채 디어반’ 등이 계약금 정액제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포항자이 애서턴은 1순위 청약에서 평균 29.76 대 1, 하늘채 디어반은 최고 42.7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다.중도금 유예나 옵션 무상 제공 등 혜택을 내세우는 단지도 늘고 있다. 지난달 분양한 충북 음성군 ‘음성 동문 더 이스트’는 계약자에게 가구별 전용창고 무상 제공 혜택을 줬다. 하늘채 디어반은 발코니 무상 시공 혜택을 내세웠다.
대출규제 강화 등으로 ‘풍선효과’가 사라진 오피스텔 시장에서는 중도금을 한참 뒤에 받겠다는 단지도 많다. 경기 평택시 ‘평택고덕2차아이파크’ 오피스텔은 중도금(분양가의 50%)을 입주 시까지 납부 유예하고 있다. 서울 중구 고급 오피스텔 ‘버밀리언 남산’도 계약금 10%만 납부하면 잔금 지급 때까지 중도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중도금 대출 리스크를 감안해 아예 분양가를 낮추는 사업장도 등장했다. 강북구 수유동에 공급되는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당초 지난달 말로 예정됐던 분양 일정을 취소했다. 중도금 대출이 어려운 9억원 초과 물량이 많은 만큼, 분양가를 재산정해 새로 입주자 모집 공고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청약시장 양극화 심해질 듯
지난해까지만 해도 ‘묻지마 청약’이 성행했던 분양 시장은 한두 달 새 분위기가 급랭했다. 대출규제 강화와 금리 상승 등으로 돈줄이 마른 데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까지 한풀 꺾여서다.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아파트 청약 평균 경쟁률은 34.43 대 1을 기록했다. 2021년 평균 경쟁률(164.13 대 1)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유일한 분양 단지인 강북구 ‘북서울자이 폴라리스’가 9억원을 넘는 고분양가 논란 등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한 탓이 컸다. 지난해 평균 28.73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낸 경기도 역시 지난달에는 10.94 대 1에 그쳤다. 전국 평균도 지난해 19.65 대 1에서 올 1월 15.84 대 1로 감소했다.
지난해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뛴 지역으로 꼽히는 인천 송도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달 초 분양한 ‘송도 럭스오션 SK뷰’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4.2 대 1로 지난해 송도 평균 청약 경쟁률의 6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바다 조망이 가능한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임에도 모집 주택형 가운데 과반에서 1순위 마감을 하지 못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매수 심리가 식은 상황에서 계약금 20%, 1차 중도금 대출 불가 등 지나치게 콧대 높은 금융 조건을 내세웠던 게 악수였다”고 분석했다.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대선 등 각종 변수로 수요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청약통장 사용을 아끼고 있다”며 “안 되는 곳은 안 되고, 잘 되는 곳은 잘 되는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