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룰렛' 같은 우크라이나 전쟁, 21·23일에 결판난다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전쟁과 긴축 공포 계속될 2월 마지막주 - 주간 증시 전망
Fed 매파 인사 연설과 인플레 지표 PCE 발표 이어져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말만 들으면 금방이라도 전면전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러시아 외교장관 회담 날짜를 잡는 걸 보면 확전은 쉽지 않은 듯한 예감이 듭니다.

유럽과 러시아 관계를 봐도 헷갈립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전에 합의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그러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와의 대규모 연합 훈련 기간을 연장하겠다며 뒤통수를 치기도 했습니다.우크라이나 전선을 봐도 종잡을 수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친러시아 반군은 연일 서방 세계와 러시아의 대리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확전되지 않도록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친러시아 반군에 대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양립 불가능한 일이 공존하는 게 작금의 우크라이나 현실입니다. 누구도 '전쟁이 일어난다'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다'고 100% 장담하기 힘듭니다. 마치 권총에 총알을 한 발만 넣고 탄창을 돌린 리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러시안 룰렛' 같은 상황입니다.

러시안 룰렛의 본질은 '목숨을 걸고 하는 내기'입니다. 누가 죽을 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상황이죠. 하지만 '러시안'이라는 수식어처럼 러시아가 1차적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냉전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러시아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장기전으로 몰고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러시안 룰렛'의 귀결은 자살 또는 살인입니다. 누군가 쏜 총알에 죽게 됩니다. 회전식 리볼버인 탄창 갯수에 따라 이론적 확률만 다를 뿐입니다. 그 확률이 6분의 1인지 8분의 1인 지를 전 세계가 숨죽이며 보고 있습니다.

"전쟁 확률은 아직 낮아"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이번 한 주를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미·러 대리전'을 보면서 서방세계와 러시아의 외교전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외교 채널은 투 트랙입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외교장관 회담이 21일(현지시간) 열립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장관 회담도 23일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성과가 있느냐가 글로벌 증시 방향을 결정지을 변수입니다.
'긴축 공포'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오래됐지만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매파적 성향을 띤 미국 중앙은행(Fed) 인사들의 연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Fed가 금리 결정의 핵심 참고지표로 쓰는 개인소비지출(PCE)이 25일에 나옵니다.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는 매주 월요일마다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기사 등으로 알짜 정보를 전해주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을 통해 찾아뵙고 있습니다.

푸틴의 변심...'은밀하게 오래 가게'

우크라이나 사태가 단기전에서 장기전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단기전에선 스피드와 순발력이 중요하지만 장기전에선 전략과 지구력이 중요합니다. 전략적으로 힘을 비축했다가 언제 스퍼트를 낼 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치지 말고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 작전이 간파되지 않도록 상대를 혼란스럽게 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전략이 딱 그렇습니다. 초기에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으로 병력을 이동시킨 것도 발빠르게 몰래 했습니다. 그래도 외부로 공표만 안했을 뿐 여기저기 위성에 그런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정확도가 높은 군사위성 뿐 아니라 간단한 주변 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트위터와 틱톡에 우크라이전의 속보가 넘쳐난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난주 후반부터 러시아의 작전이 확 바뀌었습니다. 이제 트위터와 틱톡으로 생중계되지 않도록 더 은밀하게 바뀌었습니다. 공개된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오픈소스 인텔리전스'(OSINT)의 레이더망에도 걸리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집결지에 모여 있던 러시아의 기동 방식도 산 속으로, 숲 속으로 숨어들어 게릴라전 비슷하게 바뀌었습니다. 탱크 같은 주요 무기에 'Z'라는 표식을 달아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10분 만에 마크롱 뒤통수 친 푸틴

러시아는 강·온 양면 정책을 더 헷갈리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20일에 마크롱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끝까지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면서 21일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3자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OSCE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물론 옛소련 국가까지 포함하는 모든 유럽 국가들의 협력안보체제입니다.

1차적 대화 대상은 유럽 국가들이란 걸 다시 한 번 확인사살한 거죠. 그리고 같은 날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전화통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전화통화에서 마크롱 대통령에게 러시아군이 벨라루스와 연합훈련인 '연합의 결의'를 마친 후 벨로루시를 떠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10분 뒤 푸틴 대통령의 약속은 새빨간 거짓말임이 탄로났습니다. 러시아는 20일 끝내기로 한 벨라루스와의 연합작전인 '연합의 결의'를 연장하기로 발표했습니다. 긴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 동부 상황이 악화하고 있고 주변의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갈등을 스스로 조장한 부분에 대해선 철저히 함구하고 모든 잘못을 서방세계 탓으로 돌렸습니다.

주도권 빼앗기지 않으려는 미국

러시아 전략의 또다른 축은 '양다리'입니다.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라는 당사자에 프랑스, 독일을 추가한 4자회담 채널 '노르망디 형식'회담을 기본 대화 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프랑스를 1번 파트너로 여기고 있습니다.

크렘린궁은 20일 성명에서도 "노르망디 형식으로 각국의 외교부와 정치 고문을 통한 해결책 모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노르망디 형식은 4개국이 2014년 6월 6일 프랑스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한 것을 계기로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다만 노르망디 형식 정상회담은 2019년 12월 마지막으로 열렸습니다. 최후의 통첩이나 막판 대타협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노르망디 정상회담은 열릴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미국과도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노르망디 회담의 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죠.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살짝 소외된 미국은 미국대로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선은 '공포 조성'입니다. 최근에 전쟁이나 침공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쓰는 지도자는 푸틴 대통령이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입니다.

물론 푸틴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을 내렸다"라거나 "며칠 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라는 식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말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은 미국이 나서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주력합니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악몽'을 떨쳐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작전의 실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나라"하고 "전쟁 가능성이 크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위성 첩보를 통해 확인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동향은 선택적으로 유럽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맷집 좋아진 러시아, 서방 제재 칼날 피하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으로 비화할 지, 극적 타결로 '해피엔딩'으로 귀결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각국의 생각이 너무나 다르고 변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러시아의 창과 서방 국가들의 방패를 알고 있으면 우크라이나 사태 흐름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가진 최고의 창은 에너지입니다.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러시아의 협상력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유럽과의 긴밀한 관계입니다. 유럽 경제가 러시아에 의존해 있는 측면이 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제재를 마음껏 하기 쉽지 않습니다. 북한이나 중국에 가했던 제재를 러시아에 적용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당장 러시아를 제재하지 않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이라는 가정법을 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칼날을 막을 서방세계의 최대 방패는 제재입니다. 다만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제를 강화하면 우크라이나 사태가 점점 악화일로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달러 결제망이나 국제 금융결제망(SWIFT)에서 빼는 게 현 시점에서 가장 유용한 대러 제재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각자 장기전에서 유리한 상황으로 끌고 가기 위해 기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북한식 벼랑끝 전술에 핵도발을 벤치마킹해 본인들의 몸값을 높이고 있습니다. 러시아식 자작극인 '가짜 깃발 작전'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태 해결의 적임자"라며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는 미국과 프랑스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 사태가 해결되려면 각국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일치해야 합니다. 각국이 정한 '레드라인'이 절충돼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러시아의 레드라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금지입니다. 둘째는 NATO의 동진 금지이고 셋째는 우크라이나 주변의 병력 철수입니다.

미국이 러시아의 모든 요구사항을 들어줄 리 만무합니다.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정 부분 반영해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사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봉합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수년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이 되지 않는 형태를 유지하거나 우크라이나가 자발적으로 "NATO 가입을 유보한다"는 선언을 하는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운명의 대화' 21일 23일에 열려

단기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이번주엔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될 지를 예단해볼수 있습니다. 바로 투트랙의 대화입니다.

첫번째 대화가 21일 프랑스와 러시아 외교장관 회담입니다. 같은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OSCE간 3자 회담도 있습니다.
둘째는 23일 있을 미국과 러시아의 외무 장관 회담입니다. 두 대화에서 어떤 합의 사항이 도출되면 전 세계 증시가 터닝 포인트를 마련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소한 "대화를 이어간다"거나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는 말만 나와도 다행입니다.

이 와중에 긴축은 계속 증시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말과 통계지표로 이번 주에도 긴축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긴축 발언'으로 몸값을 높이고 있는 Fed 내 매파 인사들의 연설이 예정돼 있습니다. 22일과 24일에 몰려 있습니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은행 총재(22일)와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24일)의 연설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Fed 이사 중 말발이 세지고 있는 크리스토퍼 월러도 24일에 공개석상에 섭니다. 미셸 보우만 Fed 이사(21일)와 메러디스 블랙 댈러스 연은 임시 총재(22일),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 연은 총재(24일)도 공개 발언을 합니다.
한국 시간으로 24일, 미국 시간으로 23일엔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25일 오전에 Fed의 금과옥조인 1월 개인소비지출(PCE)이 발표됩니다. 미국에서 21일이 대통령의 날이라 뉴욕 증시가 잠시 쉬어가는 것처럼 전쟁과 긴축의 공포도 휴지기를 맞으면 어떨까하고 기대해봅니다. 우크라이나와 인플레이션의 공포스러운 떼창이 좀 잦아드는 가운데 투자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