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도 우리 없인 안돼"…콘텐츠 번역 '세계 1위' 아이유노

경영탐구
글로벌 콘텐츠 '1인치 장벽' 깬 아이유노SDI

손정의가 찜한 '1.2兆 유니콘'
영어·통가어 등 100여개 언어 다뤄
현지 문화 고려한 영상 검수·편집
세계 콘텐츠 번역시장 15% 장악
이현무 아이유노SDI 대표는 “OTT 경쟁이 가열될수록 100개국 이상의 언어를 다루는 아이유노SDI와 같은 회사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문찬 기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들이 막대한 양의 영상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번역을 얼마나 빨리, 잘하느냐’는 OTT 간 승부를 가를 변수가 됐습니다.”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K영상 콘텐츠의 전 세계 흥행 뒤에는 자막과 더빙의 힘이 있었다.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속 자막을 ‘1인치의 장벽’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문화와 어조의 미묘한 차이를 다른 언어권에 온전히 전달하기는 힘들다. 이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사투를 벌이며 세계 1인자로 등극한 토종 기업이 있다.

글로벌 콘텐츠 번역 부문 1위 기업인 아이유노SDI가 그 주인공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HBO, 아마존스튜디오, 소니 등 세계 쟁쟁한 OTT 회사들이 아이유노SDI에 자막과 더빙을 맡긴다. 세계 콘텐츠 번역 시장에서 점유율은 15%에 이른다. 10년 전 2400만원에 불과했던 연간 매출은 6000억원을 바라보게 됐고, 최근엔 전 세계 번역 기업 중 유일하게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올랐다.

100여 개 언어로 전 세계 묶는다

이현무 아이유노SDI 대표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OTT 간 경쟁이 심해질수록 우리처럼 세계 100개국 이상의 언어를 다루는 회사가 절실히 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유노SDI가 취급하는 언어는 영어부터 아프리카 통가어에 이르기까지 100여 가지다. 34개 국가에 67개 지사를 두고 있다. 이 회사가 연간 번역하는 콘텐츠는 60만 편, 프리랜서 인력을 포함하면 고용 인원은 3만 명이 넘는다. 지난해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로부터 180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달 초에는 IMM인베스트먼트로부터 1400억원 규모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며 기업 가치를 1조2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이 대표는 영상 콘텐츠 번역은 단순 언어 번역을 넘어 각국의 사정에 맞게 현지화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령 이슬람 문화권에 콘텐츠가 방영될 때 돼지고기를 먹는 장면은 없는지 등을 검수해 편집하는 업무도 담당한다”며 “최근 디즈니가 OTT 시장 진출에 앞서 30~40년 전의 영상 파일을 검수하는 과정에서도 회사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준비된 기업’이 혁신에 올라탄다

이 대표는 원래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을 꿈꾸는 공학도였다. 2002년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작은 번역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월급이 밀리자 친구 2명과 직접 번역 회사를 차렸다. 방송사에서 외화 번역 일감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순식간에 위기를 맞았다. 공학도의 기술을 살려 영상 번역 작업을 PC에서도 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10억원의 빚을 졌다. 공동 창업자들이 떠나고 방송사 외주 물량도 뺏겼다.

파산 신청을 고민하던 이 대표는 2012년 ‘마지막 승부를 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전 세계 방송사의 아시아 본부가 몰려 있는 싱가포르로 떠났다. 때마침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의 물결이 세계에서 막 일기 시작했다. “번역 제대로 하는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더라”는 입소문이 한번 퍼지자 글로벌 OTT와 영상제작사들이 찾아왔다. 이 대표는 “OTT라는 거대한 파도를 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면서도 “10년이 넘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준비해왔기 때문에 그 혁신에 올라탈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유노SDI는 OTT 돌풍과 함께 고속 성장하는 동안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웠다. 2019년 유럽의 1위 사업자였던 BTI스튜디오를 합병한 데 이어 지난해 미국 1위 사업자인 SDI미디어를 인수했다. 이 대표는 “쉬지 않고 콘텐츠를 생산해내야 하는 OTT 사업의 특성상 자막·더빙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추가 M&A를 통해 회사 가치를 불린 뒤 내년 하반기 미국 나스닥 상장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종우/박시은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