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노선 10년 내놓는 조건으로…'대한항공 빅딜' 승인

공정위, 기업결합 조건부 허용

슬롯·운수권 재분배 조치
양사 26개 중복 국제노선
점유율 절반 이하로 낮춰야

업계 "경쟁력 약화 될 것" 우려
美·中·EU 등 6개국 승인 남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업결합 승인 요청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정부 주도의 ‘항공 빅딜’로 초대형 국적항공사의 탄생이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반면 공정위가 경쟁 제한을 막는다는 이유로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10년간 슬롯·운수권 재분배

공정위는 22일 뉴욕, 파리 등 ‘알짜’ 노선의 슬롯(시간당 이착륙 허용 횟수)과 운수권을 재분배하는 조건으로 두 회사의 결합을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경쟁 제한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국제선 26개와 국내선 14개 노선의 시장점유율을 줄이는 조치를 하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 같은 조치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운임을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의 주식 취득을 완료하는 날(기업결합일)로부터 10년간 ‘구조적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두 회사의 합계 점유율이 50%를 넘는 노선이 대상이다. 다른 항공사가 진입 의사를 밝히면 점유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슬롯을 줄여야 한다. 인천~뉴욕, 파리, 런던, 푸껫, 괌 등 국내 이용객이 선호하는 노선이 다수 포함됐다.

국제선 26개 노선 중 운항 운수권이 필요한 11개의 항공 비(非)자유화 노선도 포함됐다. 유럽과 중국 노선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국내선에서는 제주와 김포, 부산 등을 오가는 14개 노선도 경쟁제한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됐다.공정위는 노선 재분배 외에 노선 운임을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대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도 함께 내렸다. 공급 좌석 수를 줄이는 것도 금지했고, 좌석 간격과 무료수하물 등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도록 했다. 항공 마일리지도 2019년보다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공정위의 결정을 수용하며, 향후 해외지역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6개국 추가 승인받아야 합병 확정

초대형 국적항공사가 출범하기 위해선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영국, 호주 등 6개국 경쟁당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공정위는 이들 필수 승인국의 심사 결과를 반영해 시정조치 내용을 수정·보완하고 전원회의에서 확정할 계획이다.

해외 경쟁당국 중 한 곳이라도 불승인 결정을 내리면 통합 항공사는 물 건너가게 된다. 앞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조선 빅딜’은 EU의 합병 불승인으로 무산됐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조선과 달리 항공산업은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해 규모가 미미해 유럽 시장 등에서 독과점 가능성이 작다”고 말했다.슬롯 반납과 운수권 재분배는 항공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중복 국제노선은 65개인데 그중 40%가 재분배 대상으로 지정됐다. 공정위는 외국 항공사가 아니라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에 진입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장거리 노선에 LCC가 신규 진입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LCC가 중대형 항공기를 도입하는 것은 오는 3월 티웨이항공이 국내로 들여오는 A330-300이 첫 번째 사례다. 업계에서 해외 항공사에 시장을 내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노선 공급 좌석 수를 줄일 수 없게 한 조치도 논란이 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여행객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2019년 수준으로 항공 좌석 수를 유지할 경우 두 항공사에서만 1조5000억원의 적자가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성권 아시아나항공 대표는 이날 사내 게시판을 통해 대한항공과 결합한 이후에도 고용유지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남정민/이지훈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