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학살 국제법정에 미얀마 군정측 참석…대표성 논란

ICJ, 민주진영 대신 군정 인정…"군정 대표성 인정 위험" 비판도
군정 "감비아, 이슬람기구 대신 소송…ICJ는 국가간 분쟁만 다뤄"
미얀마 쿠데타 군사정권이 로힝야 학살 문제를 다루는 국제법정에 정부 대표로 출석해 ICJ가 이 사안을 다룰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외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로힝야족 학살 소송과 관련, 피고인 미얀마측의 입장을 청취했다.

이날 공판은 ICJ가 이번 소송의 사법권이 없다는 미얀마 군부측 이의 제기에 관한 것이다.

지난 2017년 미얀마 라카인주에서는 무슬림계 소수 로힝야족 일부가 종교 탄압 등에 반발해 경찰 초소를 습격한 이후 정부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이 전개됐다. 당시 정부군은 도처에서 성폭행, 학살, 방화를 저질렀고 이 과정에서 로힝야족 수천 명이 숨지는 한편 70만명이 넘는 난민이 이웃한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이후 2019년 11월 아프리카 이슬람국 감비아가 미얀마 정부가 집단 학살을 저질렀다고 비난하면서 ICJ에 제소함으로써 로힝야족 문제는 국제사회 심판대에 올랐다.
그러나 현재 군부에 의해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은 쿠데타 이전인 지난 2019년 12월말 ICJ에 출석, 로힝야족 학살 의혹을 부인하면서 ICJ가 사법권이 없다고 주장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수치 고문은 미얀마군이 로힝야 반군 공격에 대응한 것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국제인도법 위반이 있었다 하더라도 집단학살 의도는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었다.

2년여 만에 재개된 공판을 앞두고 지난해 2월1일 문민정부를 쿠데타로 축출한 군사정권과 문민정부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가 각각 대표성을 주장했지만 결국 군정이 법정에 섰다.

재판장인 존 도너휴 판사는 공판에 앞서 소송 당사자는 "특정 정부가 아니라 국가"라며 군정의 손을 들어줬다. 꼬 꼬 흘라잉 군정 국제조정장관은 법정에 직접 출석했고, 띠다 우 군정 검찰총장은 화상으로 참석했다.

흘라잉 장관은 ICJ의 재판 과정에 협력하겠다면서도 ICJ는 이 제소 건에 대한 사법권이 없는 만큼, 이번 재판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군정 측 변호인들도 이번 소송은 ICJ 규정에 언급된 국가간 분쟁이 아닌 만큼, ICJ는 이번 소송에 대한 사법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 변호인은 "이번 소송을 실제로 제기한 쪽은 이슬람협력기구(OIC)"라면서 "감비아는 OIC를 대신해 돕고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969년 설립된 OIC는 이슬람을 국교로 한 국가 57개국이 모인 국제기구로, 이슬람권 조직으로는 최대 규모다.

그러면서 "OIC는 국제기구이지 국가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ICJ가 군정을 미얀마 대표로 인정한 데 대해 유엔 로힝야 사태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했던 인권변호사 크리스토퍼 시도티는 AP 통신에 "터무니없는 일로, 군정은 미얀마의 정부가 아니며, 미얀마를 대표하지도 않는다"면서 "ICJ가 군부에 미얀마를 대표하도록 허용한 건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법원 바깥에서는 20여명이 '미얀마를 구해주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 중 일부는 군정 대표단의 도착에 맞춰 냄비를 두드리기도 했다.

미얀마에서는 냄비 등을 두드리며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악마를 쫓는다는 의미다.

이틀 뒤에는 소송을 제기한 감비아측이 법정에서 발언할 예정이다. ICJ 사법권과 관련한 결정이 나오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외신은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