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일촉즉발] 미국, 대러제재 시동…한국의 동참 가능성은

청와대 "여러 가능성 열고 검토"…상황 주시하며 단계적 대응 모색할 듯
미국이 22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고 규정하고 첫 대러시아 제재 조처를 내놓으면서 한국 정부도 이에 동참할지 주목된다. 정부는 사실상 미국과 대러 제재와 관련해 협의해오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동참 가능성을 닫지는 않았지만, 당장 행동에 나서는 데는 여전히 신중한 분위기다.

우크라이나 상황의 전개 방향,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 한러관계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단계별로 대응 수위를 검토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3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으로부터 대(對)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나'라는 물음에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고강도의 수출통제, 금융제재 등의 계획을 계속 밝혀왔다"며 "우방국에도 이런 협의를 쭉 해오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이 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해 동맹 및 우방과의 '단합된 대응'을 강조해온 만큼, 아시아의 핵심 동맹인 한국과도 긴밀히 협의해왔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한국 정부는 현재로서는 대화와 외교를 통해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인식을 보이고 있으며, 대러 제재 동참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 방향성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주요 7개국(G7) 등과 비교하면 다소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지역 2곳의 독립을 승인하고 파병을 승인하자 '1차분'으로 표현한 첫 제재 패키지를 내놨다.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VEB 및 방산지원특수은행인 PSB, 그리고 이들의 자회사 42곳에 대한 자산동결, 러시아 국채 거래 제한, 크렘린과 연계된 러시아 최상류층 인사에 대한 개인 제재 등이 주요 내용이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해당 제재가 "EU부터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 등에 이르는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함께 발표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으며, 실제로 해당 동맹 및 우방국들도 속속 대러 제재안을 발표했다. 한국도 대러 제재 동참 여부에 일단 선을 긋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미국이 요청하는 움직임에 일정 부분 보조를 맞출 가능성은 열려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주요 서방국들은 대러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며 "우리로서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런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보고 있다"고 했다.

특히 대러 조치에 협조하는 방식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적 제재 체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 역시 비교적 약한 단계지만 사실상 협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독자 제재는 미국이 세계 금융시장에서 지닌 영향력 등으로 인해 사실상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갖는 경우가 많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미국이 대러 제재에 나섰을 때도 한국은 독자 제재 등 명시적인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국내 기업들의 대러시아 거래가 크게 위축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보다 강도를 높여 한국이 직접 독자 제재를 취한다고 해도 상징적 차원의 조치부터 수출통제 등 실제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조치까지 다양한 옵션이 있다.

단 미국으로선 러시아에 대한 실질적 압박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강국이자 자동차, 전자제품 등을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는 동맹국 한국의 수출통제 동참을 원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2일 미국이 제재 문제를 놓고 아시아의 경제 강국들과도 협의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싱가포르, 일본, 대만으로부터 수출통제 시행 계획에 대한 지지를 얻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이 기사에서 한국의 지지 여부는 거론되지 않았다.

정부는 다양한 옵션을 염두에 두고 상황 전개를 봐 가면서 단계적인 대응 조처를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가 결국 외교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사태가 심각하게 격화한다면 정부도 미국에 일정 정도 협력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