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급등에 풍력 기업 '실적 쇼크'

'친환경 에너지' 대표 주자인 풍력 발전 기업들이 실적 부진으로 시름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물류망이 멈추면서 생산 비용이 오르면서다. 세계 3대 풍력발전 기업인 베스타스, 지멘스가메사, 오스테드의 시가총액은 1년 남짓 기간 동안 900억 달러 넘게 사라졌다. 이들과 달리 석탄 기업들은 큰 수익을 올렸다
[한경ESG] ESG NOW
사진은 세계 3대 풍력발전 기업 중 하나인 베스타스의 풍력 발전 모습. / 베스타스 홈페이지
ESG 열풍에 세계 각국이 청정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친환경 에너지’ 대표 주자인 풍력발전 기업들은 실적 부진으로 시름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물류망이 멈추면서 생산 비용이 올랐기 때문이다. 들쑥날쑥한 풍속 탓에 풍력발전 효율성마저 떨어졌다. 반면 온실가스 배출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 기업들은 활짝 웃었다. 유가가 급등하고 에너지난이 심해지면서 반짝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세계 3대 풍력발전 기업인 베스타스, 지멘스가메사, 오스테드의 지난해 1월 기준 기업가치는 1724억 달러였다. 1년 남짓 지난 올해 2월 이들의 기업가치는 786억 달러까지 내려갔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에서 900억 달러 넘게 사라진 것이다.

3대 풍력 기업 시총 900억 달러 이상 증발

세계 최대 풍력터빈 제조업체인 덴마크 베스타스와 독일 풍력터빈 제조사 지멘스가메사, 덴마크 풍력에너지 기업 오스테드의 주가는 1년 동안 30~40% 하락했다. 션 매클로플린 HSBC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20년 중 풍력터빈 제조업체의 수익성이 최악인 해”라고 평가했다.팬데믹 이후 무너진 공급망은 풍력발전 기업의 성장세를 꺾었다. 풍력터빈 제조업체는 공급망의 영향을 많이 받는 민감한 사업군으로 꼽힌다. 100톤에 달하는 풍력터빈 한 개를 만들기 위해선 세계 각지에서 조달한 부품 수천 개가 필요하다. 강철, 구리 등 금속 원자재와 희토류도 쓰인다. 최근엔 일부 터빈 제작용 부품 납품에 걸리는 시간이 5주에서 50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소재 하나만 부족해도 업계 전반엔 ‘퍼펙트 스톰‘이 몰아칠 위험이 크다. 부품 몇 개만 도착이 늦어져도 완제품 생산 일정은 줄줄이 지연된다.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위약금을 내야 하는 등 생산업체의 비용 부담이 급증한다. 세계 각지에서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수시로 바뀌면서 터빈 제조공장 등의 가동도 일정하지 않았다.

글로벌풍력발전위원회 벤 백웰 대표는 “2020년 이후 화물 비용이 6배 증가하고 철강과 구리 가격은 각각 50%, 60% 올랐다”며 “생산 비용이 급증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베스타스, 지멘스가메사 등 풍력터빈 기업의 이익은 올해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에너지 비용 변동성이 높아지자 새 터빈 계약을 미루는 사례도 늘었다. 베스타스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3%였다고 밝혔다. 이전 예측치인 4%, 초기 전망치였던 6~8%보다 크게 낮아졌다. 올해의 영업이익률은 0~4%로 내다봤다. 수익성이 계속 악화할 것이라는 의미다. 헨리크 안데르센 베스타스 CEO는 “어려운 비즈니스 환경이 올해 내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멘스가메사는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9%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4분기 손실만 4억300만 유로였다. GE의 풍력사업부도 지난해 4분기 3억12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풍력에너지를 판매하는 기업의 수익성도 악화했다. 유럽에 바람이 불지 않아 발전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석탄 회사들은 함박웃음이들과 달리 석탄 기업들은 큰 수익을 올렸다. 세계 최대 민간 석탄 기업으로 꼽히는 피바디에너지는 지난해 4분기 5억1300만 달러의 순이익을 보고, 1999년 이후 최고 실적을 냈다. 연간 순이익도 3억6010만 달러로 흑자 전환했다.

2016년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석탄 시장의 추락을 알린 미 2위 석탄생산업체 아크 리소시스(옛 아크콜)도 지난해 3억 달러 넘는 순이익을 보고했다. 폴 랭 아크 리소시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20년간 본 적 없는 (석탄)가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는 내리막길을 걷던 석탄 산업이 급반전한 해였다.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석탄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미국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화력발전소 등에서 사용한 석탄은 지난해 5억300만US톤(쇼트톤·1US톤=907.2kg)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석탄을 사용한 전력발전량이 증가한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에도 6억600만US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발전소들이 석탄을 활용해 만든 전기도 1만350TWh(테라와트시)로 2020년보다 9% 늘었다. 석탄 수요가 급증하면서 피바디의 석탄 공급 가격은 80~150% 급등했다. 넘치는 수요 덕에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피바디에너지의 주가는 1년 사이 300% 넘게 올랐다. 같은 기간 아크 주가도 100% 이상 증가했다.

“실적 역전 지속하진 않을 것”

터빈 가격은 풍력터빈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년간 하락해왔다. 지난해에는 이런 가격 흐름도 반등했다. 미 투자 기업 번스타인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에만 풍력터빈 가격이 9% 오르면서 2015년 가격과 같아졌다. 수년 전 정한 납품 가격으로 완제품을 배송해야 하는 터빈 제조사들은 비용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평가다. 가격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려워서다.

풍력과 석탄 기업들의 표정을 바꾼 실적 역전 현상이 계속되진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장기적으로는 청정에너지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기업들이 원자재 물류비용 부담을 고려해 터빈 가격을 높이면 실적을 개선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올해와 내년까지는 풍력 기업들의 이익이 다소 줄어들 수 있다는 평가다. 공급망 영향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데다 미국과 중국이 신규 풍력발전 시설에 쏟아붓던 지원금을 없앴기 때문이다.석탄 기업들의 ‘반짝 실적’은 1~2년 사이 꺾일 위험이 크다. 문 닫는 탄광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미 에너지경제연구소는 지난해부터 2030년까지 92GW(기가와트) 전력생산량을 갖춘 석탄 화력발전소가 문을 닫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전력 기업인 듀크에너지와 조지아파워는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석탄발전소를 폐쇄할 계획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