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자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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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한자책수천 년간 동양 사회에서 공동 문어로 사용된 한자는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는 물론 일상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한편으론 방대한 문자의 뜻과 음을 암기해야 하는 탓에 학생은 물론 성인들도 선뜻 배우고 익히길 꺼리는 대상이다.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 한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다룬 의미 깊은 책이 잇달아 출간돼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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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시대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는 한자의 연원을 따지는 데 있어 오랫동안 절대적 권위를 누렸다. 하지만 설문해자의 해석은 갑골문 발견 이후 상당수가 그 근거를 상실했다. 갑골문은 전통 시대 학자들이 풀지 못한 글자의 ‘뿌리’를 밝혀내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집 가(家)’자다.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를 쓴 청나라 고증학자 단옥재를 비롯해 수많은 학자가 ‘집 면()’이라는 부수 아래에 ‘돼지 시(豕)’가 들어 있는 이유를 마땅히 설명하지 못했다. 중국인의 조상들이 돼지와 함께 살았다는 설부터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는 동물이어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의 의미로 그 글자를 빌려왔다는 추론까지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지만 명쾌하지 않은 구석이 적지 않았다.이런 상황에서 갑골문이 해법에 직결되는 ‘돌파구’를 제시했다. 갑골학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면 집 면() 아래에 원래 있던 것은 희생용으로 살해된 개(犬)였다. 갑골문에선 토지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죽은 개가 꼬리를 내린 모습이 선명했다. 가(家)란 원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사당이었다. 진대의 서체인 전서체로 쓴 문자가 개보다 돼지처럼 보인 탓에 후대에 도저히 풀 수 없는 미스터리를 남겼던 것이다.
갑골문을 연구하면 ‘흰 백(白)’자가 어떻게 ‘하얗다’는 뜻을 지니게 됐는지 의문이 술술 풀린다. 흰 백(白)은 원래 백골이 된 두개골의 모양을 본뜬 상형자다.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나 적의 수급을 백골화해 보존하던 풍습에서 ‘우두머리 백(伯)’자까지 나왔다. 수장의 머리를 자르는 것을 형상화한 사람 인()과 백골화한 두개골(白)에서 우두머리 백(伯)자가 유래했다는 설명에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실정에 맞게 한글 자음 순서대로 배열한 2135개 주요 상용한자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고, 뜻이 형성됐는지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사전 곳곳에서 고대인의 생활과 의식을 알아야 제대로 된 한자 해석이 가능하다는 저자의 지론이 느껴진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