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서 OTT로 재빨리 '환승'…"개봉 한 달도 안 됐는데"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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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VOD 시장 진출 예년보다 빨라져국내 영화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장기화로 2년째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 영화산업 시장 규모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상업영화 수익률 또한 역대 최저를 기록한 상황이다.
OTT에서 뜻밖의 흥행 거두는 일도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영화산업 시장 규모는 1조 239억 원으로 2년째 감소세를 보였다. 2조 5093억 원 규모였던 2019년과 비교하면 40.8% 수준으로 축소된 것이다.유일한 상승세를 보인 곳은 바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서비스 부문이다. OTT와 웹하드 매출을 합한 인터넷 VOD(주문형 비디오) 시장 매출액은 1067억 원으로 35.4% 증가했다. 전체 극장 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년도 17.5%에서 27.8%로 올랐다.
한국 영화 신작들이 개봉한 지 한 달여 만에 OTT나 VOD를 선택하는 것은 피치 못할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올해 개봉 영화 중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두 작품이 이 같은 수순을 밟았다.
지난 1월 26일 극장 개봉한 설경구, 이선균 주연의 '킹메이커'는 지난 24일부터 PTV 및 OTT에서 극장 동시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봉한 지 29일 만이다.배급사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에 따르면 '킹메이커'는 IPTV, 홈초이스, 구글 플레이, TVING, wavve, 네이버 시리즈on, 카카오페이지, KT skylife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킹메이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과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치열한 선거판에 뛰어들며 시작되는 드라마를 그린 영화로 75만 관객을 들였다.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제작진과 배우 설경구의 재회로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큰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올해 개봉작 중 첫 100만, 최다 관객 129만 명을 들인 '해적: 도깨비 깃발'도 오는 3월 2일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했다. '해적2'의 제작비는 200억 원으로 손익분기점은 4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작품도 개봉한 지 35일 만에 OTT 공개를 택한 것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세계 각국의 팬데믹과 시장 상황을 고려해 효율적인 해외 배급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배우 및 제작진과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지난 1월 5일 개봉해 68만 관객을 모은 조진웅 최우식의 '경관의 피'와 12일 개봉해 44만 관객을 들인 '특송'은 개봉한 지 23일, 30일 만에 VOD를 출시했다. 또 지난해 하반기 개봉한 '유체이탈자', '연애 빠진 로맨스', '장르만 로맨스' 등도 한 달도 못가 VOD 시장으로 향했다.예전이라면 극장에 걸려 좋은 성적을 기대했을 법한 작품들이 줄줄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자 OTT나 VOD 시장으로 수익 창구를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다소 이른 시점에 VOD로 풀렸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지난해 인구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도 1.17회로, 전년(1.15회)보다는 약간 늘었지만 2019년 4.37회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예년 상황이었다면 영화 1편당 최소 3배에서 많게는 4~5배의 관객을 모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박 정도의 작품이라도 한 달간은 관객들을 꾸준히 모았으나 최근에는 개봉 초반 반짝하고 관객들이 모인 후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라며 "극장서 볼 사람은 다 봤다고 판단하고 OTT 등으로 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극장 찾기를 꺼리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입장권 판매 수익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은 꿈 같은 일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VOD 진출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며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영화 '강릉'(30만 명)과 같이 극장 성적은 저조했으나 VOD에서 깜짝 흥행을 기록하는 때도 있다. 해당 작품은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007 노 타임 투 다이' 등 할리우드 작품들을 제치고 IPTV 3개사·디지털케이블TV 박스오피스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영화 창작, 제작, 영화제, 상영관, 학계 등 각 분야 인사 503명은 "2020년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극장 매출 감소는 상영관 중심의 독과점 특수를 누리던 국내 영화산업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으며, 정부의 지원이 필요했던 창작자와 중소 제작·배급사, 상영관은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실"이라며 "대작 영화 개봉 유도나 할인권 지원 등 방안만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이어 "코로나19를 계기로 OTT 시장에서 특수를 본 넷플릭스나 디즈니 등 글로벌 미디어 자본은 전 지구적 플랫폼 환경 변화가 수익 창출의 기회가 되겠지만, 한국 영화 산업은 전례 없는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며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한 유일하고도 근본적인 방안은 창작, 제작, 배급, 상영의 선순환 구조를 새롭게 만들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