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매수세에 반등한 미국 주식시장…"지정학 영향 단기적"


“거리가 피로 물들 때가 매입 적기다.” 세계적 금융 가문인 로스차일드를 일군 영국 나탄 마이어 로스차일드가 1815년 워털루 전쟁 후 남긴 말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던 2014년 ‘전쟁 매수(buy the invasion)’를 경험한 세계 투자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다시 전쟁의 포성이 울려 퍼지자 금융시장에 돈을 쏟아부었다.

2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S&P500지수는 전날보다 1.5% 상승한 4288.7로 장을 마쳤다. 나스닥지수와 다우지수도 각각 3.34%, 0.28% 올랐다. 장 초반엔 전쟁 공포가 시장을 휘감았다. 나스닥은 장중 한 때 3.5% 가까이 하락했고 S&P500지수도 2.6%까지 밀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예정보다 1시간 늦게 기자회견을 시작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방안을 발표하자 시장 분위기는 반전됐다.이날 상승세에 신호탄을 쏜 것은 나스닥의 중소형 성장주였다. 팬데믹 위기가 지정학적 위기로 옮겨가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강한 긴축 정책을 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번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수 주간 이어졌던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된 데다 저가 매수세도 유입됐다.

라이언 데트릭 LPL금융 시장전략가는 “전쟁이 시작되자 투자자들은 일단 주식을 매각한 뒤 나중에 시장 방향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지정학적 위기 때마다 시장 영향은 단기적으로 끝났다”고 했다. 이날 증시가 급반등하면서 나스닥100지수는 지난해 3월 이후 가장 큰 변동폭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진단도 시장의 공포감을 낮췄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날 투자자 메모를 통해 “S&P500지수는 지정학적 문제보다 기술주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며 “S&P500에 포함된 기업들의 러시아 수출 비중은 0.1%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유가가 상승했지만 미국의 에너지 자급도가 높기 때문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록의 조셉 자이들 투자전략가는 “미국은 6조달러의 경기부양책을 시행하는 세계 유일한 경제 대국”이라며 “성장의 섬인 미국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라고 했다.

이날 군사비 지출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늘면서 각국의 방산주가 일제히 올랐다. 미국에선 스텔스기 제조업체인 노스럽그루먼 주가가 2.4% 상승했다. 영국 방산기업인 BAE시스템도 4.69% 올랐다. 에너지난 우려가 커지자 덴마크 풍력기업 오스테드 주가는 15.8% 급등했다. 미국 태양광에너지 기업인 엔페이즈에너지도 16% 넘게 상승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