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은행 300곳 송금·결제 다 막힌다…"뱅크런·루블화 폭락 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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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금융 고립' 작전 개시
러 중앙銀 보유 외환 접근 막고
푸틴 1000억弗 은닉 자산도 차단
S&P, 신용등급 '정크'로 강등
반도체부터 보드카까지 옥죄기
"러, 中의존도 더 키울 것" 전망 속
당분간 세계 금융시장 혼란 불가피
“이번 제재는 역사적으로 가장 광범위할 것이다. 러시아는 심각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파괴다. 그러나 실은 자신들의 미래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고, 러시아 중앙은행의 보유 외화에 대한 접근도 제한하는 추가 제재안을 발표하면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서방의 추가 제재가 러시아에 엄청난 압박을 가할 것”이라며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과 루블화 가치 폭락, 국내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금융 핵무기 ‘SWIFT’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SWIFT는 “수일 내에 러시아 은행에 대한 제재를 이행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며 “구체적 내용에 대해 유럽 당국과 논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SWIFT는 벨기에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유럽과 벨기에의 규정을 따르고 있다.러시아 은행들을 SWIFT 결제망에서 차단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경제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조치로 여겨져 왔다. 러시아 은행 300여 곳이 SWIFT에 가입해 있으며 러시아는 전체 국제 금융거래의 80%를 SWIFT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 송금은 보통 △각국 은행 간 ‘송금 정보 송신’ △양측의 송금액을 더하고 빼서 간소화하는 ‘청산’ △청산한 금액을 보내는 ‘결제’ 등 3단계로 구성된다. SWIFT는 국제 송금의 첫 단계인 송금 정보 송신을 담당하는 고도로 높은 보안을 갖춘 전산망이다. 은행들이 SWIFT를 활용하지 못하면 사실상 국가 간 송금을 하지 못하게 된다. 러시아 은행들을 SWIFT에서 배제하면 러시아 기업과 개인은 수출 대금을 받거나 수입 대금을 지급하는 것을 비롯해 해외에서 대출하거나 투자하는 것이 힘들어진다.거세지는 대(對)러 제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는 잇따라 제재를 쏟아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금융 에너지 교통 군수품 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민간 제품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미국과 EU 등은 첨단제품에 필수적인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등에 수출 규제를 가해 미래 먹거리까지 옥죄기로 했다.미국과 캐나다는 러시아의 대형 은행은 물론 방산 수출업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까지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일본도 푸틴 대통령의 자산을 동결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숨긴 재산이 100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S&P는 러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정크(투자부적격) 수준으로 강등했다.
제재 효과 거둘까
국제 사회의 제재에 러시아가 한발 물러설지 관심이다. SWIFT 제재는 러시아에 피해를 주겠지만 세계 경제에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러시아와 무역을 많이 하는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서방의 제재 등으로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서방 은행들이 러시아에서 대출을 회수하기 어려워진다는 것도 문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프랑스, 미국 등 외국 은행이 러시아 기업에 대출한 금액은 1210억달러에 달한다.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SWIFT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14년과 2015년 각각 독자적 결제망인 러시아금융통신시스템(SPFS)과 중국국제결제시스템(CIPS)을 구축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재로 러시아가 중국의 CIPS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NYT는 “전쟁이 길어지면 푸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상용 기자/베이징=강현우 특파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