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 제3차 대전으로 비화할까

우크라이나는 지리적 특수성과 군사적 요충지로 ‘유라시아 화약고’라 불릴 만큼 분쟁이 잦은 곳이다. 최악의 상황인 전면전으로 비화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크라니아와 러시아 전쟁의 당사국들이 주요 농산물과 부존자원의 생산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경ESG] ESG와 경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제3차 대전에 해당하는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다행인 것은 과거 키프러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으로 보는 것이 아직까지는 지배적인 시각이다. 사진은 우크라 인근 흑해로 이동 중인 러시아 상륙함 / 연합뉴스
지난해 11월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 방향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시나리오가 논의돼왔다. 하나는 이해당사국이 모두 참가하는 전면전으로 치닫는 ‘비관론’, 다른 하나는 민스크 협정과 핀란드식 중립화 해법에 따라 다시 평화를 찾는 ‘낙관론’ 그리고 두 시각의 중간지대인 ‘회색론’으로 국지전이 발생하는 경우다.

당초 예상대로 세 번째 시나리오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일어났다. 앞으로 제3차 대전에 해당하는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다행인 것은, 과거 키프러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으로 보는 것이 아직까지는 지배적 시각이라는 점이다.찻잔 속 태풍은 2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국토 면적 등과 같은 하드파워 위상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최악의 경우 전쟁으로 우크라이나가 디폴트에 빠져도 국제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뜻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중앙은행(Fed)이 나서지 않는 것도 이러한 판단에서다.


우크라이나, 유라시아의 화약고

하지만 찻잔 속에 무엇이 담겼느냐에 따라 그 영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뜨거운 커피가 들어 있는데 찻잔을 조금만 잘못 저으면 밖으로 튀어 뜻하지 않게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국가들이 어떻게 이해관계를 조율해나갈지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우크라이나는 뜨거운 커피 그 이상이다. 지리적 특수성과 군사적 요충지로 ‘유라시아 화약고’라 불릴 만큼 분쟁이 잦은 곳이다. 경제적으로도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부존자원 등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게 평가받아왔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가스관이 지나는 우크라이나를 중시해왔다.

앞으로 더 뜨거워질 수 있는 것은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주 책임자가 될 유럽중앙은행(ECB)은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과거 키프로스 사태에 적용한 ‘베일 아웃(bail out, 구제금융)’이 아니라 ‘베일 인(bail in, 손실 참여)’ 방식을 채택할 확률이 높다.

베일 아웃은 국가, 은행 등이 지급 불능에 처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베일 인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예금자나 투자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전자는 눈에 익을 만큼 널리 사용돼왔으나 후자처럼 은행 예금자에게 손실을 입히는 사례는 없었다.우크라이나 사태에 베일 인 방식이 채택되면 독일과 러시아 간 갈등이 또 한 차례 표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방식을 주도할 국가는 독일이고, 우크라이나 은행에 예금을 많이 한 국가는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독일 입장만 강조하다가는 우크라이나에서 예금 인출이 발생해 유럽 위기로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론적으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은행과 예금은 안전하다고 인식돼왔다. 하지만 베일 인 방식이 채택되면 앞으로 어떤 은행을 선택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은행을 잘못 선택해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이들 은행에 가입한 예금자들은 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정치적·군사적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금융 분야에서도 한 차례 전쟁을 치를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면전을 택할까? 오히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이해당사국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새플리‧로스의 공생적 게임이론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문제는 최악의 상황인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않는다 해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의 당사국들이 주요 농산물과 부존자원 생산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은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슬로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까지 덮치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JP모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유가가 150달러로 급등할 경우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종전 전망치인 4.1%에서 0.9%까지 급락하고, 세계 인플레이션율은 3%에서 7.2%로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2차 오일 쇼크 이후 1980년대 초에 닥친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악성으로 평가된다.

JP모건, “세계 인플레이션율 급등할 것”

40년 전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오르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당시까지 주류 경제학이던 케인스언의 총수요 관리 대책은 무기력했다. 이때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정책 목표대로 수단을 달리 가져가야 한다는 ‘틴버겐 정리’와 Fed 의장이던 볼 볼커가 물가안정을 최우선시했다는 차원에서 ‘인플레 파이터’라는 새로운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제학적으로도 획기적 변화가 있었다. 경기대책 수단을 총수요에서 총공급으로 전환한 것이 ‘레이건노믹스’라고도 불리는 공급중시경제학이다. 래퍼 곡선에 따라 세율과 세수 간 역비례 관계에 있는 비표준 지대에서는 세금을 낮춰야 경제 의욕이 고취돼 성장률이 올라가고 재정수입도 늘어난다는 것이 이론적 배경이다.

지난해 5월부터 불거진 인플레에 대처하기 위해 Fed는 통화정책 우선순위를 2012년 이후 중시해온 ‘고용 창출’에서 ‘물가안정’ 쪽으로 돌려놓았다. 레이건 정부 시절과 다른 점은 당시 Fed 의장이 인플레 파이터 역할을 했으나 최근에는 지지도 추락에 시달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보는 눈이 곱지 못하다는 것이다.

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으로 전환한다면 지난해 2분기를 정점으로 둔화된 경기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문제다. 현재 행동주의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빚내서 더 쓰자’는 현대통화론이론(Modern Monetary Theory, MMT)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바이든 정부의 실질적 경제 컨트롤타워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현대공급중시경제학(Modern Supply-Side Economics, MSSE)으로 맞서고 있다.

MSSE의 논리는 이렇다. 최근처럼 금융 완화에 따른 숙취 현상과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정책 목표를 가진 여건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단순히 세율만 낮춰서는 안 되고, 1930년대 뉴딜정책처럼 사회간접자본(SOC) 등 국가 인프라를 개조하는 공급확대정책을 추진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옐런 장관의 주장이다.

‘사회 인프라법’으로 통칭하는 MSSE는 앨버트 허시먼 교수가 주장하는 전후방 연관 효과가 커 단기적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중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 면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진전된 디지털 추세에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고용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이른바 상흔 효과가 큰 중하위 계층의 일자리를 늘려 ‘국민 화합과 통합’이라는 바이든 정부의 국정 목표에도 부합한다.

옐런 장관의 MMSE는 미국 경제보다 더 어려운 우리 경제의 극복 방안으로 반드시 검토해봐야 한다. 올해 초슈퍼급 예산안을 확정한 후 잉크도 마르기 전 추경 편성해 단순히 재정지출을 늘려서는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 재원 조달 방안으로 검토되는 적자국채를 중앙은행이 인수해야 한다는 ‘부채의 화폐화’ 방안은 더더욱 안 된다.차기 정부를 이끌어갈 대통령 후보들에게 주는 시사점도 크다. 최근에 고개를 들고 있는 스크루플레이션, 가계부채에 이어 국가부채 위기, 개방화 위기보다 폐쇄형 위기, 중진국 함정을 뛰어넘어 선진국 함정에 빠질지 모른다는 ‘한국 경제 신위기론’은 누가 맡더라도 차기 정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