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역삼동 LG아트센터"…22년 '공연 성지' 추억 속으로

지난 27일 '하데스…" 마지막 공연
동시대 거장무대로 위상 높여
10월 마곡동에 새 공연장 개관
지난 27일 LG아트센터의 22년 역삼동 시대를 마감한 뮤지컬 ‘하데스타운’. 클립서비스 제공
“술잔을 높이 들고 들이켜자, 형제여! 이 첫 잔은 오르페우스를 위해~.”

지난 27일 오후 9시30분께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종연 커튼콜 무대가 시작됐다. 극 중 페르세포네 역을 열연한 박혜나는 무선 마이크를 떼고 ‘생목소리’로 앙코르곡 ‘잔을 높이 들고’를 불렀다.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LG아트센터 ‘역삼동 시대’를 마감하는 마지막 곡에 귀를 기울였다.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가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에서 퇴장할 때까지 박수갈채가 길게 이어졌다. 박혜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많은 예술인의 숨결이 담긴 공연장에서 마지막으로 노래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웅장해졌다”며 “이곳에서의 추억을 잘 간직해두고 새로운 곳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는 이날 공연 전 안내 방송을 통해 “본 공연을 끝으로 역삼동 LG아트센터는 22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며 “오는 10월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관객 여러분과 새롭게 만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2000년 3월 1103석 규모의 단관 공연장으로 개관한 LG아트센터는 그동안 세계 공연예술 거장과 혁신적 예술가들의 동시대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피나 바우쉬, 피터 브룩, 레프 도진, 로베르 르빠주, 매슈 본 등의 작품이 이 공연장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 관객과 만났다.이를 통해 LG아트센터는 국내 예술인과 공연 애호가들에게 ‘공연 성지’로 자리 잡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총연출한 양정웅 극단 여행자 대표는 “독일 탈리아 극장의 ‘단테의 신곡’(2002) 등 작심하고 외국에 가도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을 보며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며 “저를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이 이곳에서 어마어마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는 국내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신작을 제작하고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제작 극장’ 역할도 톡톡히 했다. 연출가 양정웅·서재형, 안무가 정영두, 소리꾼 이자람 등이 이곳에서 대표작을 탄생시키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기획 공연과 함께 공연장 운영의 양대 축인 대관은 라이선스 뮤지컬의 장기 공연 위주로 이뤄졌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을 시작으로 ‘아이다’ ‘스위니 토드’ ‘빌리 엘리어트’ ‘레베카’ ‘하데스타운’ 등을 국내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며 ‘명품 뮤지컬 초연 극장’으로 각광받았다.

LG아트센터가 떠난 역삼동 공연장은 건물주인 GS그룹이 리노베이션을 거쳐 직접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10월 개관하는 마곡동 LG아트센터는 1335석 규모의 ‘그랜드 씨어터’와 365석 규모의 ‘블랙박스’로 구성된다. 입지가 도심에서 시 외곽지역으로 이전하고, 공연장 규모가 커지는 만큼 프로그램 운영도 바뀐다. 애호가 중심의 예술극장에서 탈피해 뮤지컬과 서커스, 대중음악 콘서트 등 폭넓은 관객층을 수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공연계의 관심을 모은 그랜드 씨어터의 첫 대관 공연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담은 흥행 뮤지컬 ‘영웅’으로 확정됐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