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만원으로 '24조 넥슨 제국' 일군 게임巨人

김정주 넥슨 창업주 별세…향년 54세

한국 온라인 게임의 대부
1996년 첫 게임 '바람의나라' 출시
카트라이더·던파 등 잇따라 히트

"넥슨을 아시아의 디즈니로"
日 상장 후 글로벌 도약 했지만
2016년 '진경준 게이트'로 고초

어린이병원 기부 사회공헌 꾸준
대외활동 줄며 최근 우울증 악화

유가족, 지분 매각 나설지 주목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이사는 넥슨을 ‘아시아의 디즈니’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살았다. 넥슨은 꾸준히 성장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손꼽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김 이사는 생전에 그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됐다. 그는 대신 시가총액 24조원, 매출 3조원에 육박하는 한국 대표 게임사를 유산으로 남겼다.

온라인 게임에 도전한 KAIST 학생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미국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난 김 이사가 창업의 뜻을 품기 시작한 것은 KAIST의 전산학 석사 과정 재학 시절부터였다. 김 이사는 당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무궁무진한 인터넷 세계에서 게임의 가능성을 봤다. 김 이사와 송 대표는 서울대 학부(컴퓨터공학과) 새내기 시절부터 KAIST 대학원까지 함께 공부한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두 사람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 이사는 박사 과정에 진학했지만 6개월 만에 공부를 그만두고 1994년 넥슨을 설립했다.

넥슨이 1996년 내놓은 첫 게임 ‘바람의 나라’는 사명에 걸맞은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 그래픽 기반 온라인 게임이었다. 처음에는 기술력이 부족해 동시 접속하는 이용자가 50명만 넘어도 서버가 멈췄다. 하지만 1999년에는 동시접속자 수 12만 명을 돌파하며 넥슨의 연 매출 100억원대 시대를 연 게임이 됐다. 넥슨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크레이지 아케이드’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던전앤파이터’ 등 굵직한 인기 게임을 확보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 회사로 컸다.

넥슨은 2011년 퀀텀 점프를 한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다. 일본 증시 상장을 택한 건 게임사에 대한 기업가치 평가가 한국보다 후했기 때문이다. 넥슨을 디즈니 같은 인기 지식재산권(IP)이 많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만들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 앞서 넥슨은 2005년 넥슨을 투자 부문인 넥슨홀딩스와 게임 사업 부문인 넥슨으로 분할했다. 넥슨홀딩스는 NXC로 바뀌었다. 김 이사는 NXC 대표를 맡은 이후에는 게임 외 분야에 투자를 확대했다. 노르웨이의 유아용품 기업인 스토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암호화폐거래소 비트스탬프, 한국 최초의 암호화폐거래소 코빗 등을 인수했다.

첨단산업 투자와 기부 활동에 전념

김 이사는 2016년 친구였던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비상장 주식을 매입할 대금 등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법정 다툼 끝에 2018년 무죄가 확정됐다. 예전부터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김 이사는 대외 활동을 더 줄이는 대신 사회 공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죄 판결 직후 김 이사는 1000억원 이상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넥슨재단을 통해서는 2019년 대전시에 최초의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100억원을 기부했다. 2020년에는 국내 최초 독립형 어린이 완화 의료센터 건립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100억원도 기부했다.

넥슨의 향후 경영 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전문 경영인 체제가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1일 사내 공지에서 “저와 넥슨 경영진은 그의 뜻을 이어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업계의 애도도 이어졌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페이스북에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떠났다. 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는 글을 올렸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 내정자도 “업계의 슬픔”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김 이사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지분 67.49%를 소유하고 있다. 전일 종가 기준으로 넥슨의 지분 가치만 따지면 7조3000억여원 규모다. 유족인 부인 유정현 NXC 감사와 두 딸의 지분까지 더하면 김 이사 가족의 NXC 총 지분은 98.2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 모두 가족에게 상속될 전망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김 이사가 이전에도 넥슨 매각에 뜻이 있었던 만큼 넥슨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현재 김 이사의 총 자산 규모는 NXC 지분을 포함해 95억달러(약 11조4400억원)에 이른다. 한국인 부호 순위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94억달러)을 제친 1위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