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피하자"…서울 '꼼수 분양' 봇물

서울 리모델링 단지에 확산
"공급효과 없는 '이상 분양'"
사진=뉴스1
서울에서 리모델링을 하는 아파트 단지들을 중심으로 '29가구 분양'이 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등 각종 규제가 30가구부터 적용돼 이를 피하기 위한 '꼼수 분양'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상 분양'은 시장에 공급 효과가 거의 없는 데다, 단기 투자 수요 유입으로 인한 가격 추가 상승 등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결같이 29가구 분양하는 리모델링 단지

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송파동 성지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은 이르면 이달 리모델링을 통해 늘어나는 29가구를 일반 분양한다. 1992년 지어진 이 단지는 국내 첫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298가구에서 327가구로 늘어난다. 수직증축을 통해 최고 층수도 15층에서 18층으로 높아진다.분양가는 역대 최고 수준. 조합은 일반 분양가로 3.3㎡(평)당 6500만원을 책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종전 분양 최고가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의 5273만원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전용 103㎡ 기준 일반 분양가는 25억~26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송파구 송파동 성지아파트 리모델링 조감도 사진=포스코건설
이 단지는 애초 리모델링으로 42가구를 늘리려다가 29가구를 늘려 분양하는 것으로 사업 계획을 바꿨다. 현행법상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면 기존 가구 수보다 15%까지 주택 수를 늘릴 수 있다. 그럼에도 29가구 분양을 선택한 것은 분양가 상한제를 비롯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관리가 30가구 이상부터 적용돼서다.

이런 단지들은 서울 지역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송파구 오금동 '송파 더 플래티넘'은 이미 29가구 분양을 진행했고 △구로구 신도림동 '신도림 우성 3차'(29가구)·'우성 5차'(23가구) △서초구 반포동 '반포푸르지오'(29가구)·잠원동 '잠원 훼미리'(22가구) △광진구 광장동 '상록타워'(29가구) △동대문구 답십리동 '신답극동아파트'(29가구) △강동구 고덕동 '배재현대'(29가구) 등이 29가구 이하 분양을 준비하고 있다.

'배짱 분양' 나서는 조합…"공급 효과 없다" 지적도

이처럼 29가구 분양을 택하는 것은 각종 규제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하느니 분양 규모를 줄이더라도 제값을 받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리모델링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공사비와 사업비가 많이 드는데, 특히 공사비 비중이 크다"며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공사비 원가 수준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사업성이 크지 않은 리모델링을 추진하면서 조금이라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공급이 부족해 '배짱 가격'으로 분양해도 많은 수요자가 몰린다는 점도 '이상 분양'을 선택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비싼 분양가에도 수요자들이 찾아오니 조합 입장에선 29가구 분양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앞서 모델링 단지 중 처음으로 일반 분양에 나섰던 송파구 오금동 송파 더 플래티넘은 29가구 공급에 7만5382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2599대 1에 달했다.

오금동 A공인중개 관계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서울에 공급 물량이 너무 없다 보니 수요자들이 몰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첨자를 추첨으로 가리고, 전매 제한도 없다 보니 단기 투자 수요까지 유입돼 더 과열된 것"이라고 했다.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꼼수 분양'은 시장 상황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철저히 '공급자 관점'에서 이뤄지는 분양"이라며 "29가구 분양은 시장에 공급 효과를 주지 않을뿐더러 규제를 피해 단기 차익을 보려는 투자자들까지 유입된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들이 입게 된다"고 짚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재건축 허가가 안 나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트는 단지가 많다. 최근 리모델링 단지들을 보면 1990년 이전 지어진 곳들이 상당수"라면서 "이런 단지들은 리모델링보다는 재건축이 공급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결국 제도적으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런 사례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