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광채, 깃털같은 붓놀림…부드러운 화면 속으로 빠져들다

英 현대미술가 제이슨 마틴展
캔버스 가득 나 있는 붓 자국들이 가운데 한 점으로 빨려들듯 모인다. 깃털처럼 가벼운 붓놀림과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색상이 만나 다양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새털구름이 뜬 하늘, 잔잔한 물결이 이는 수면, 곱게 묶은 보자기의 매듭…. 정중동(靜中動)의 이미지에 화면이 발하는 은은한 광채가 더해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국의 현대미술가 제이슨 마틴(52)의 ‘무제’(사진) 연작이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마틴의 국내 첫 개인전 ‘수렴(Convergence)’이 열리고 있다. 작가가 알루미늄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추상화 11점과 종이에 수채물감으로 그린 2점 등 총 13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다.마틴은 데이미언 허스트,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등과 함께 이른바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yBa: young British artists)’ 그룹으로 분류된다. 그도 다른 yBa 작가들처럼 1997년 영국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 열린 ‘센세이션(Sensation)’전에 작품을 내건 뒤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마틴은 전위적인 설치예술이나 행위예술에 치중한 동료들과 달리 20여 년간 회화 외길을 걸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금속이나 유리 위에 유화물감과 아크릴 젤을 칠한 뒤 스스로 만든 빗 모양의 도구로 줄무늬를 긋고, 두껍게 덧바른 물감의 미세한 높낮이와 양감의 차이를 통해 조각 같은 효과를 낸 그림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모색해온 그가 이번에 새로 내놓은 신작은 ‘알루미늄 회화’다. 빛을 은은하게 반사하는 알루미늄 판 위에 유화물감을 묻힌 뒤 일반 회화용 붓을 가볍게 놀려 편안하면서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하고 가벼운 색감을 택했다는 설명이다.가운데로 수렴하는 특유의 무늬는 동양의 보자기 매듭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틴은 “25년 전 일본의 다도(茶道) 거장이 내게 보자기로 싼 옷을 맡겼는데, 곱고 정교한 매듭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수백 번 붓놀림을 반복해 중앙으로 수렴하는 줄무늬를 그리는 과정은 마치 명상과도 같았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4월 16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